“편의점 판매약 10년째 13개”…국회미래연, 의약품 3분류 법제화 제안
허종호 연구위원 “전문·일반·약국외 판매 체계 재설계 필요” 급여재평가 연계 비처방 확대…“자가투약, 재정·접근성 해법”
감기약·해열진통제 등 일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한 ‘안전상비의약품’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판매 품목은 여전히 13개에 머물러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이러한 정체가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 효율성을 동시에 저해하고 있다며 의약품 분류 체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의약품 중심으로 고착된 구조에서 벗어나 일반의약품과 약국외 판매의약품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건강보험 급여 재평가와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해외 주요국 사례를 근거로 “자가투약(self-medication) 활성화는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는 현실적인 정책 수단”이라고 밝혔다.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일반의약품 및 약국외 판매의약품 확대 방안」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의약품 분류 체계가 인구 고령화와 의료 이용 변화,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라는 환경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 이원 구조에 더해 ‘약국외 판매의약품’을 별도의 체계로 명확히 정립하고, 상시적·주기적 재분류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전문의약품 76%…자가투약 영역은 축소”
30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0월 기준 국내 허가 의약품 3만6,916개 중 전문의약품은 2만8,007개로 전체의 75.9%를 차지했다. 일반의약품은 8,909개로 24.1%에 불과했다.
공급 기준으로 봐도 전문의약품은 증가 추세인 반면 일반의약품은 감소하고 있어, 자가투약과 경증 질환 관리 영역이 점차 축소되는 방향으로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약국 외 판매가 허용된 안전상비의약품은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3개 품목이 전부다. 법적으로는 20개 이내 범위에서 지정할 수 있고 3년마다 타당성 재검토를 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제도 도입 이후 10년 넘게 품목 변동이 없었다. 보고서는 이를 “제도는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평가했다.
약품비 증가 압력…“고령화가 구조적 원인”
보고서는 약품 재분류 논의의 배경으로 급증하는 건강보험 약품비를 들었다. 건강보험 약품 청구액은 2011년 13.1조 원에서 2024년 27.0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약품비는 같은 기간 5.2조 원에서 14.0조 원으로 증가해 전체 약품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39.7%에서 2024년 51.7%로 높아졌다. 약품비 증가의 상당 부분이 고령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증 질환까지 건강보험 급여와 처방 중심으로 관리하는 구조는 재정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문제의식이다.
“재분류, 이의 제기 때만”…수동적 제도 지적
현행 의약품 재분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사·치과의사·약사 단체나 등록 소비자 단체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만 개시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2000년 의약분업 연계 재분류, 2012년 안전상비의약품 도입, 2021년 스테로이드 외용제 분류 변경 등 세 차례만 실질적인 재분류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경계가 한 번 정해지면 사실상 고정되는 정태적 구조”라며, 안전성·유효성·실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주기적 재평가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해외는 ‘Rx→OTC’ 확대 흐름
보고서는 미국·일본·프랑스 등 주요국 사례를 통해 비처방의약품 확대가 보편적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OTC 모노그래프’ 제도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립된 성분은 별도의 신약 허가 없이 비처방의약품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의료비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일본은 ‘스위치 OTC’ 제도를 통해 의료용 의약품을 일반용 의약품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자가투약을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까지 연계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외래 급여 의약품을 5년마다 재평가해 임상적 유용성이 낮은 품목은 급여에서 제외하고 OTC 시장으로 이동시키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3분류 체계 법률로 명확히”
보고서는 정책적 개선 방안으로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약국외 판매의약품의 ‘3분류 체계’를 법률 차원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급여 적정성 재평가와 연계해 비처방·약국외 판매 의약품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재분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점진적 이행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안전상비의약품에 대해서는 “품목 수를 법으로 고정하는 방식은 즉각 개선이 필요하다”며, 주기적 재분류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약사법」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자가투약 확대가 오남용이나 진단 지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약사 상담을 전제로 한 비처방군 관리, 명확한 표시와 복약지도 강화 등 보완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의약품 재분류는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무엇을 자가투약 영역으로 둘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며 “안전성과 접근성, 재정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체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