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제자리 리포락셀액, 중국서 먼저 ‘국가급 치료제’로 인정

국내선 반복된 급여 좌절, 중국선 허가·보험등재까지 일사천리 기술은 한국에서 나왔지만 시장은 중국이 먼저 열어 약가제도 구조적 한계 노출 대표 사례

2025-12-12     최은택 기자
마시는 파클리탁셀 리포락셀액. [사진=대화제약]

세계 최초 경구용 파클리탁셀 항암제 '리포락셀액’이 중국에서 국가급여의약품목록(NRDL)에 공식 등재되며 치료 환경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반면 국내에서는 2016년 허가 이후 9년째 보험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하며 제도적 한계가 반복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다. 기술혁신의 출발지는 한국이었지만, 정작 시장을 가장 먼저 연 곳은 중국이었다.

세계 최초 기술에도 급여 불가…평가기준 혁신 못 따라가

리포락셀액은 난용성 파클리탁셀을 지질 기반 자체유화 플랫폼(DHLASED) 기술을 통해 경구 흡수가 가능하도록 한 개량신약이다. 

전처치와 3시간 넘는 투약시간이 필요했던 정맥주사 치료를 복용 제제로 대체하며, 임상에서는 탈모·말초신경병증 등 부작용 개선도 확인됐다. 환자 편의성과 병원 운영 효율을 모두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제형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급여 등재 과정에서는 이 같은 기술성과 임상적 개선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2018년·2019년·2020년 세 차례 심의에서 모두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평가금액 이하 수용 시 급여 적정성이 있음.” 문제는 그 평가금액의 산정 방식이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파클리탁셀 300mg 제형의 가중평균가를 기준으로 매우 낮은 금액이 제시됐고, 이는 최초등재의약품 상한금액의 53.55% 수준에 불과했다. 혁신형 제약사 가산을 적용하더라도 일반 경구 제네릭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 과정은 국내 약가제도가 기술혁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시대 변화에 비해 지나치게 경직돼 있음을 드러냈다. 제형 변화가 환자 편익과 임상적 안전성 개선으로 이어졌음에도, 현행 개량신약 기준은 ‘투여경로 동일성’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새로운 기술적 진보를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평가금액 산정 또한 시장 사용량이 아닌 ‘가장 저렴한 조합’을 기준으로 계산되는 방식이어서 실제 임상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약계가 민관협의체에서 “현 기준이 최신 기술 수준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개량신약 기준 확대를 요청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와 보험당국은 “임상자료가 충분하면 신약으로 평가받으면 된다”는 입장을 유지하며 제도 개선에 난색을 보여왔다. 그 결과 리포락셀액은 국내에서 기술혁신과 약가 결정 사이의 괴리를 상징하는 사례가 됐다.

중국, 시판 허가 후 1년 3개월만에 급여시장 문 열어줘

리포락셀액은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속도로 시장에 진입했다. 대화제약은 2017년 RMX Biopharma社와 2,500만 달러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뒤 중국 내 55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했다. 2022년 9월 허가 신청을 마쳤고, 2024년 9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으로부터 위암 적응증에 대한 시판허가를 획득했다.

허가 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2025년 1월 비급여 판매가 시작됐고, 같은 해 중국 국가의료보장국(NHSA)은 리포락셀액을 2025년 국가급여의약품목록(NRDL)에 신규 등재했다. 급여 적용은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며, 급여 가격은 1바이알(30ml/300mg)당 1,208위안으로 결정됐다. 급여 대상은 1차 플루오로우라실(5-FU) 계열 요법 치료 중 또는 치료 후 질병이 진행한 진행성 위암 환자다.

중국의 항암제 시장은 2030년 6,094억 위안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며, 위암은 중국 내 사망률 상위 암종으로 의료적 수요가 크다. 임상적 효용과 병원 운영 효율 개선까지 고려하면 리포락셀액이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화제약은 중국 파트너 Haihe Biopharma, 3SBio와 함께 병원 처방 확대, 공급망 안정화, 마케팅 네트워크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이번 NRDL 등재를 핵심 마일스톤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혁신…한·중 두 나라의 ‘평가 기준’ 전혀 달랐다

리포락셀액 사례는 두 국가가 기술혁신을 평가하고 보험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얼마나 상이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투여경로 동일성 중심’의 개량신약 기준과 ‘가장 저가 제형 기준’의 평가금액 산정 방식이 기술혁신을 인정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새로운 제형이더라도 기존 주사제의 가중평균가 수준에서 평가가 시작되기 때문에, 혁신성과 임상적 개선이 약가로 이어지기 어렵다. 신약·개량신약·제네릭 간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아 기술적 진보가 가격 책정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반면 중국에서는 허가 후 실제 임상 활용성과 치료 효율성, 환자 접근성 등을 기준으로 보험 등재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위암 환자 규모와 항암제 시장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리포락셀액의 시장성과 치료 가치를 적극 반영한 모습이다.

중국서 시작된 ‘두 번째 여정’…대화제약, 글로벌 확장 본격화

대화제약은 중국에서의 NRDL 등재를 계기로 글로벌 확장 전략을 가속하고 있다. Haihe Biopharma와 함께 중국에서 공식 런칭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중국 유통 경험을 기반으로 아시아·중동·동유럽·서유럽·미주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한국·중국·동유럽 3개국에서 진행 중인 유방암 MRCT 3상도 2024년 말 완료가 예상되며, 2025년에는 추가 적응증 허가 신청도 추진할 전망이다.

리포락셀액이 드러낸 약가제도의 숙제

리포락셀액의 상반된 여정은 국내 약가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확인시킨다. 기술혁신이 실제 임상적 가치로 이어지더라도, 그 혁신을 가격·급여 결정에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개량신약 기준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평가금액 산정 방식은 임상 현실과 괴리돼 있으며, 기업의 혁신 노력과 가격 보상이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이어진다.

중국에서 리포락셀액이 ‘국가급 치료제’로 인정받은 반면, 국내에서는 비급여 상태에 머무르는 현실은 환자 접근성과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기술혁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환자와 시장에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