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 정책방향 그대로…‘이재명표 약가제도’ 필요하다”

한 연구자 “신약 평가 축소는 위험…별도기금 기반의 조건부 접근성 도입해야” 약가제도 개편안 발표 이후 전문가들 강한 문제 제기 이어져

2025-12-08     최은택 기자
[사진=픽스베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서 “전(前) 정부 설계를 그대로 이어받은 재탕 수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신약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평가를 축소하는 듯한 정책 방향은 “패러다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한 연구자는 “이재명 정부가 새로운 약가체계를 표방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철학과 구조를 담아야 한다”고 했다.

이 연구자는 5일 뉴스더보이스 취재에서 “이번 개편안의 골격은 윤석열 정부 당시 수행된 연구용역과 당시 차관·과장이 만들어 둔 초안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기존 안을 답습한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편안은) ‘이재명 표 약가제도’로 부르기는 어렵다”며 “정권이 바뀌면 정책 방향도 새롭게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로는 신약 평가 절차의 약화 우려를 꼽았다. 그는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의 방향을 두고 “임상적 유용성 평가나 비용효과성 평가를 거의 안 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좋은 약을 선별해 적정 비용으로 적시에 환자에게 공급한다는 WHO 접근성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며 “평가 체계 자체가 약화되면 ‘negative’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강조한 ‘등재 기간 단축’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등재 지연을 100% 정부 탓으로 돌리는 건 사실과 다르다”며 “제약사들이 자료 보완에 시간을 끄는 경우도 많아 100일 단축 같은 단순한 접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불확실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중간 단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안전성·유효성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신약을 환자가 빨리 쓰도록 하려면, 건강보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별도 과정이 필요하다”며 “외국처럼 별도 기금을 통해 접근성을 먼저 보장하고, 모니터링과 실제 데이터(RWE) 축적을 거쳐 비용효과성을 다시 평가하는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효과성(ICER) 임계값 상향 논의에 대해선 “옥석을 가리지 않고 일괄 급여하겠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증질환 치료제는 ICER가 높아도 급여하는 구조가 이미 있다”며 “근거가 충분한 ‘옥’만 골라내는 과정이 핵심인데, 정부는 그 과정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네릭 정책과 관련해서는 “재정 절감 외에는 정책적 목표가 없다”고 단언했다. 연구자는 “10억 원 미만 매출의 영세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로 유지되는 구조는 산업이라 보기 어렵다”며 “가격 인하가 강화되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정부가 추진 중인 사실상의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에 대해 “과거 실패해 폐지됐던 제도”라며 “복지부가 파급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이번 개편안이 전 정부의 설계를 그대로 가져온 만큼,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약가체계를 만들려면 평가 강화와 별도 기금 기반 접근성 제도 등 완전히 다른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점을 기사에 꼭 써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앞서 국내 근거중심 의료기술평가 전문 연구자인 13인은 언론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을 전면 철회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