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시선] 약가개편, 속도보다 지속성을 고민해야 한다

환자·산업 등 이해당사자가 함께 만드는 제도 개편돼야

2025-12-01     뉴스더보이스

보건복지부가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약가제도 개편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신약 개발 환경을 지원하며, 필수의약품의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책 방향 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지점이 있다. 특히 희귀질환치료제 등재 기간을 크게 줄이겠다는 방침과 약가 유연계약(이중약가) 적용 확대는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분명한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방향이 옳다고 해서 그 추진 방식까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경쟁이 아니라, 수용 가능한 제도 설계와 현장과의 조율이다. 정책은 발표 순간이 아니라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는 순간에 영향력을 갖는다. 실제 평가와 등재, 가격 관리, 데이터 처리, 청구 체계 운영을 담당할 주체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의 실무적 협의가 부족했다는 업계 지적은 결코 가벼이 넘길 부분이 아니다.

희귀질환치료제의 ‘3개월 등재’ 목표는 의미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행정적 장치가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은 선언적 의미에 머물 위험이 있다. 제출자료 간소화, 평가 병렬화, 절차 단축, 검토 기준 명문화 등 실질적 설계 없이는 신속등재가 현실이 되기 어렵다. 환자단체조차 “방향은 맞지만 실제 체감 가능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제약업계의 반발도 단순히 기득권의 불만으로만 볼 수 없다. 제네릭 약가 기준을 53.5%에서 40대%로 낮추는 조치는 제네릭 시장 약 11조 규모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2조 8천억 원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반면 혁신형 제약기업 인센티브라며 제시된 규모는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확한 추계가 아닌 어림잡은 수치이지만 “2조 8천억을 깎고 100억을 준다는 것은 혁신 지원이 아니라 사실상의 구조조정 압박”이라는 국내 한 제약사 임원의 호소는 결코 과장이 아닌 듯 하다.

이 문제에는 약가제도 운영의 역사적 맥락이 자리한다. 크게 보면 2007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 시행 이후 20년 가까이, 짧게 보면 2012년 일괄인하 이후 13년 동안 제도는 수많은 부분 개편과 예외 적용을 반복하며 복잡성을 키워왔다. 약가제도가 복잡한 이유는 원래부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자주 수정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은 그 누적된 구조를 정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 논의는 밀어붙이기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환자 접근성 확대 제도의 경우 속도전이 일부 필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수용 가능성과 현실 가능성, 그리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안정적 제도 설계다.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접근성 개선과 산업 기반 안정성이 동시에 담보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다음 단계는 명확하다. 복지부–심평원–공단–업계–환자단체 간 실무 협의를 가동하고, 세부 기준과 운영 프로세스를 조속히 공개해야 한다. 제도 변경으로 인한 시행 충격을 완화하는 단계적 적용이 이뤄져야 하며,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과 산업 기반 보호를 위한 예외 규정도 병행 마련해야 한다. 정책이 현장에서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이러한 세부 설계와 조율이 필수적이다.

정책은 정부만의 것이 아니다. 그 제도의 효과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환자이고, 그 제도의 부담을 견디는 곳은 산업이며, 그 제도의 실행을 감당하는 기관은 심평원과 공단이다.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더 숙고해야 한다. 속도를 늦추더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고 제도를 다듬는 과정은 정책의 신뢰와 지속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정부가 발표 내용을 되돌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정책 추진 방식에 대해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속도나 단기 성과보다는 실효성과 수용성, 그리고 환자와 국민, 나아가 정책수요자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때 이번 약가제도 개편은 선언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하는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