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제도➃] "약가 인하 중심 정책, 제약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

국내 제약사 약가 정책 담당 임원 호소

2025-12-01     최은택 기자

[약가제도 개편안(4)=업계 호소]

보건복지부가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한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뉴스더보이스가 국내 제약사 한 임원을 취재한 내용을 기고문 형식으로 재정리했다. 앞으로 정부는 개편안을 구체화하고 필요한 경우 각계 의견을 들어 일부라도 손질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제약업계의 날 것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정리한 글인 만큼 정책 추진과정에서 참고자료가 되길 기대한다.

[사진=픽사베이]

"약가 인하 중심 정책, 제약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약가제도 개편은 ‘혁신형 제약기업 우대’라는 포장으로 발표됐지만, 실체는 제약산업 전체에 심각한 부담을 지운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신규 등재 의약품에만 우대 조건을 제공하고 기존 등재 의약품의 약가 인하에는 아무런 우대도 없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은 제약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작동 가능한 대상조차 없는 보여주기식 제도에 불과하다. 

향후 5년 동안 국내에서 특허가 만료되는 합성의약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제너릭 개발을 통한 우대 혜택을 말하지만, 특허 만료 대상이 거의 없으니 적용될 약 자체가 없다. 정부는 2020년에 제네릭 가격 기준을 53.55%로 정하며 개발과 품질 관리를 장려했지만, 이번 개편으로 40%대까지 낮추려 한다. 이는 제네릭 개발의 의지를 오히려 꺾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정책의 숫자를 보자. 제너릭 시장은 약 11조 원 규모다. 이번 약가 인하가 말하는 25.3% 인하율을 적용하면 어림잡아 약 2조 8천억 원의 인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혁신형 제약기업 우대라고 말하는 R&D 감면은 대략 100억 원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추측된다. 즉 100억을 주는 척하면서 2조 8천억을 빼앗아 가는 셈이다. 이는 제약기업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제약기업을 손실 구조로 몰아넣는 정책이다. 

과거의 실패 사례도 이미 존재한다. 2012년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에서는 “제너릭 약가를 낮춰 연구개발을 촉진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약가 인하가 고가약 위주 판매를 초래했고, 제약사들은 약가가 떨어지지 않는 오리지널 제품 위주로 영업했다. 그 결과 국민 부담은 13.8% 늘어났고, 재정은 오히려 증가했다. 약가를 인하하면 국민 부담이 줄어든다는 단순 가정은 현실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현장에서의 제조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항생제를 생산하려면 단독 생산 라인과 비싼 원료가 필요하지만, 약가는 계속 떨어진다. 실제로 항생제를 생산하면 할수록 약 10%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필수 의약품조차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경영상 압박이 아니라 국민 보건의 위협이다. 

현재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글로벌 임상 단계에 들어선 프로젝트가 증가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가 인하를 추진하는 정책은 제약사의 R&D 능력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산업기반의 붕괴로 이어진다. 

정부는 스스로 솔직해야 한다. 이번 정책은 재정 절감을 위한 정책인가, 혁신을 위한 정책인가. 후자라면 적용 가능한 대상 의약품이 없어서는 안 되며, 전자라면 국민과 기업에 솔직해야 한다. “재정 절감을 위해 특정 부분에서 양보를 요청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지금처럼 포장을 바꿔가며 혁신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기업 생태계를 압박하는 방식은 결국 산업을 무너뜨리는 길이다. 

약가 인하가 단기적으로 정부의 성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제약산업의 기반만 약화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경고하고자 한다. 원료 의약품 산업이 이미 붕괴한 한국 제약산업의 현실에서 다음으로 붕괴될 것은 제너릭 완제 의약품 산업이다. 그 결과는 국민의 기본 의약품 접근권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약가 정책은 장기적인 산업 생태계를 지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책의 실체를 냉철하게 돌아보고, 단기적 재정 절감 수치가 아니라 제약산업과 국민 건강의 미래를 바라보는 정책으로 전환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