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 패러다임 전환…‘증상 완화’에서 ‘질병 원인 치료’로

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 등장에 시장 지형 변화 높은 약가·조기진단 체계는 과제

2025-09-18     문윤희 기자

국내 치매 환자가 내년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치매 치료제 시장이 ‘증상 완화 중심’에서 ‘질병 원인 치료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기존 약물이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의 병리적 원인을 겨냥해 질병 진행 자체를 늦추려는 치료 전략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환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치료 패러다임 변화가 의료시장과 보건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건당국과 의료계 분석을 종합하면 국내 치매 환자 수는 약 97만 명 수준이며 내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60~80%가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알려져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기억력 저하를 시작으로 언어 능력과 판단력,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점차 감소하는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장기적인 돌봄 부담을 안기는 질환으로 사회적 비용 역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고령 인구 증가와 함께 환자 규모가 확대되면서 치료제 개발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기존 치료제는 ‘증상 관리’ 역할

현재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치매 치료제는 대부분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증상 치료제’다. 대표적으로 콜린분해효소 억제제인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과 NMDA 수용체 길항제 메만틴이 있다.

이들 약물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조절해 기억력과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일정 부분 늦추는 효과가 있다. 환자의 일상생활 유지 기간을 늘리는 데 도움을 주지만 질병의 근본적인 진행 자체를 멈추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알츠하이머병의 병리적 원인을 직접 겨냥하는 치료제 개발이 오랫동안 중요한 과제로 꼽혀 왔다.

한국에자이 레켐비[사진=한국에자이]

최근 등장한 항체 치료제는 이러한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며 신경세포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제거하거나 축적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질병 진행을 늦추려는 치료 전략이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약물이 레켐비(성분 레카네맙)와 키순라(성분 도나네맙)다.

레켐비는 글로벌 임상 연구에서 인지 기능과 일상 기능 저하 속도를 약 27% 늦춘 결과가 보고됐다. 키순라 역시 임상시험에서 질병 진행 속도를 약 20~30% 정도 늦추는 효과가 확인되며 차세대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레켐비는 지난해 국내 허가를 받아 시장에 진입했고 키순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두 치료제는 모두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투여 방식과 임상 데이터 등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신약 개발도 ‘원인 치료’ 중심

치매 신약 개발 흐름 역시 질병 조절 치료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H)가 공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파이프라인 분석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겨냥한 치료제가 전체 후보 물질의 약 7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 기전을 보면 신경전달체 수용체 조절제가 약 22%로 가장 많았고 아밀로이드 표적 치료제가 18%를 차지했다. 이어 신경염증 및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치료제 17%,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11% 순이었다.

기존 승인 약물을 새로운 적응증에 활용하는 ‘약물 재창출’ 전략도 활발하다. 전체 개발 후보 가운데 약 3분의 1이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되고 있다.

다만 치료 패러다임 변화가 곧바로 환자 치료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약가와 접근성이다.

항체 치료제는 개발 비용이 높아 치료비 역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또 정기적인 정맥주사 투여와 뇌 MRI 검사 등 추가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해 의료 시스템 부담도 크다.

치료 적응증이 초기 단계 환자에게 제한된다는 점도 현실적인 과제로 꼽힌다. 알츠하이머병은 초기 증상이 비교적 미미해 환자가 병을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조기 진단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치료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진단·보험·돌봄 체계 함께 개선 필요

의료계에서는 신약 도입과 함께 조기 진단 체계와 보험 보장성 확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혈액 검사나 영상 검사 등을 활용한 바이오마커 기반 진단 기술 개발과 환자 선별을 위한 검진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급여 정책도 중요한 과제다. 고가 치료제가 등장할수록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 지원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한치매학회 관계자는 “치매 치료제 시장은 이제 단순한 증상 관리 단계에서 벗어나 질병 원인을 겨냥하는 새로운 치료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그러나 치료 패러다임 변화가 환자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약제 개발뿐 아니라 진단 시스템과 보험 보장성, 돌봄 체계까지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치매 치료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환자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질병 진행을 늦추는 치료제가 추가로 등장할 경우 치료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치매학회 집계에서는 지난해 국내 출시된 레켐비가 현재까지 약 1400명의 환자에게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새로운 치료 옵션에 대한 의료 현장의 관심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치매 치료제 시장이 ‘증상 완화’ 중심에서 ‘질병 원인 치료’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향후 신약 개발 경쟁과 정책 논의 역시 한층 활발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