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토론회 두고 논란…“환자 안전 빠진 산업 육성 논의”
조건부 허가 확대·재생의료 규제완화 요구 제기 건약 “기업 민원 중심 토론…환자 안전 위협 우려”
정부가 추진 중인 K-바이오 산업 육성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K-바이오, 혁신에 속도를 더하다’ 토론회를 두고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토론회에서 제약·바이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완화 요구가 잇따른 반면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약사들로 구성된 보건 시민단체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는 8일 성명을 통해 “이번 토론회는 환자 안전과 공공성을 논의하기보다는 산업계 요구를 청취하는 자리에 가까웠다”며 “정부가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보다 산업 육성을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 “규제가 장벽 되지 않도록 하겠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렸으며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제약·바이오 기업, 의료계, 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바이오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바이오 산업은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산업”이라며 “연구개발 과정에서 규제가 장벽이 되지 않도록 규제 완화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발표에서 국내 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는 제약·바이오 업계와 전문가들이 신약 개발 속도 제고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산업계 “조건부 허가 확대 필요”
토론 과정에서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의 규제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산업계 의견이 잇따랐다.
특히 일부 참석자들은 희귀·난치질환뿐 아니라 비만 치료제 등 시장성이 큰 분야에서도 조건부 허가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건부 허가 제도는 임상시험 데이터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았더라도 일정 수준의 근거가 있을 경우 제한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고 글로벌 시장 진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첨단재생의료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와 함께 바이오시밀러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임상시험 절차 간소화 등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건약 “국민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는 발상”
건약은 이러한 주장들이 환자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산업 논리에 치우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건약은 “의약품 규제는 단순한 산업 규제가 아니라 임상시험 대상자와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이번 토론회에서는 산업 발전을 명분으로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주장들이 다수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건부 허가 확대 요구에 대해 건약은 “수출 시장 진출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안전성과 유효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결국 국민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재생의료 규제 완화 논쟁
재생의료 규제 완화 논의에 대해서도 건약은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토론회에서는 첨단 재생의료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건약은 “재생의료 규제 완화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 환자에게 적용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이미 첨단재생바이오법 개정을 통해 규제가 상당 부분 완화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규제 완화는 통제 어려운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건약은 과거 줄기세포 연구 논란을 일으켰던 황우석 사태와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사건을 언급하며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성급하게 상용화하려는 정책은 제2의 황우석 사태나 인보사 사태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플로리다에서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로 환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사례를 들며 “한국이 이러한 사례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시밀러 논쟁도
토론회에서는 바이오시밀러 시장 활성화 방안도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일부 산업계 관계자들은 바이오시밀러 전환이 늦어지는 이유로 규제 장벽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건약은 이에 대해 “바이오시밀러 확산이 더딘 이유는 규제가 아니라 가격 구조 문제”라고 반박했다.
건약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바이오시밀러 가격을 낮춰 시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사용하지만 한국은 오리지널 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며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기업이 가격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식약처가 신약 허가 심사 속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며 인공지능 기반 심사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바이오시밀러 관련 규제 개혁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건약은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바이오시밀러 임상시험 간소화 논의가 상당히 진행됐다”며 “영국과 WHO, 유럽의약품청 등이 관련 가이드라인을 개정했지만 한국은 이제야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는 단계”라고 지적했다.
“산업 정책보다 국민 건강 우선”
건약은 이번 토론회가 정부의 보건 정책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건약은 “복지부는 보건산업부가 아니며 식약처 역시 제약산업 육성 기관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우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산업 육성 정책을 중단하고 건강권 보호 중심의 보건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