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질환, 법의 사각지대 방치…“국가 책임 명문화 시급”
사망원인 2위에도 개별법 없어…암·치매 대비 입법 편차 극심 산정특례·보험급여 후순위 밀려 환자 치료비 부담 가중
심장학회·코딧, 법적 정의·보장성 확대 등 5대 개선안 제시
심장질환은 국내 사망원인 2위, 세계적으로는 1위의 치명적 질환이지만, 한국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이를 온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 암, 치매 등은 개별법과 국가 전략을 통해 집중 관리되고 있으나, 심장질환은 ‘심뇌혈관질환 관리법’의 포괄적 조항에 묶여 사실상 입법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로 인해 심부전·부정맥·심장판막증 등 고위험군 환자들은 산정특례 적용에서 배제되거나 치료비 지원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대한심장학회와 코딧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이 5일 발표한 「심장질환 법제화 공백과 개선 방향」 이슈페이퍼는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국가 차원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5대 제도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법적 정의 체계 정비=현행 법령은 ‘심근경색 등’으로 정의가 제한돼 있고, 심부전·부정맥·폐고혈압 같은 고위험군이 배제돼 있다. 연구원은 “법률 차원에서 심장질환의 범위를 명확히 명시해야 정책·재정 배분의 기준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보장성 제도 내 우선 적용 확대=심장질환은 현재 급성기 일부를 제외하고 산정특례나 재난적 의료비 지원에서 뒷전이다. 이슈페이퍼는 국가와 지자체에 법적으로 보장성 강화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환자 가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제도의 집행력을 높이는 방안이다.
중증도 기반 진료체계 개편=권역심뇌혈관센터는 급성기 중심으로 설계돼 장기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이 소외되고 있다. 연구원은 ‘중증 심뇌혈관센터’와 ‘일반 심뇌혈관센터’의 이원화, 2차 전문병원 확대 지정을 통해 지역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장질환 특화 중환자 인프라 확충=정부가 지원하는 중환자실 유형 중 심장중환자실만 제외돼 있어 병상 확보와 인력 배치에서 공백이 발생한다. 이슈페이퍼는 법적 지원을 통해 심장중환자실 운영비와 인력 비용을 보전, 형평성과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강증진기금 활용 근거 마련=건강증진기금은 현재 암 등 특정 질환에 편중돼 있다. 연구원은 흡연과 심혈관질환의 인과성을 고려해 심장질환 예방·진료·재활 등에 기금 사용을 법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정책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슈페이퍼는 특히 21·22대 국회에서 심장질환 관련 단독 법안이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반면 같은 기간 치매 관련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15건, 22대 국회에서 6건이 발의됐다. 암 관련 법안 역시 다수 논의됐다. 입법 공백은 곧 정책적·재정적 우선순위에서의 배제를 의미하며, 이는 곧 환자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심장질환은 단순한 의료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법적 책임 범주에 포함돼야 한다”며 “입법·정책·예산이 연계된 종합적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심장질환을 독립된 보건정책 핵심 의제로 격상시키는 것이 환자 생존율과 삶의 질을 지키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대한심장학회 강석민 이사장은 “심장질환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암, 치매 등 다른 주요 사망원인에 비해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현저히 부족하다”며 “이번 공동 분석을 계기로 심장질환에 대한 국가 차원의 법적·정책적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히 추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