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환자에게 필요한 건 ‘가격’이 아닌 ‘시간’이다

2025-08-22     문윤희 기자

"기자 양반, 나는 괜찮은데 그래도 젊은이들은 살아야 할 것 아니요. 기사로 힘을 보태주세요."


"아이가 이렇게 힘든데, 엄마, 아빠가 힘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인터뷰에 나서는 거예요. 기사로 저희 목소리가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일 아침에 눈뜨면 내가 죽어 있을지도 모르니 너무 놀라지 말라는 말을 남편에게 거의 매일 농담처럼 해요. 꿈이 있다면 아이들을 바로 서서 안아보는 거예요. 꿈이 있다면...아이들에게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하루라도 보여주는 거예요."

최근 만난 환자와 가족들이 기자에게 전한 당부다. 더 살아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그리고 언제 끊길지 모르는 내일에 대한 불안을 그들은 담담히 이야기했다. 내달 초 열릴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앞두고 환자들이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약사에게는 사업적 이해가 달린 사안일 수 있지만, 환자에게는 이번 약평위가 곧 ‘삶을 이어갈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약평위는 신약의 가치를 평가할 때 주로 비용 대비 효과, 즉 ‘경제성’을 가장 큰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환자에게 약은 단순한 약값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에게 치료제는 ‘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며, 치료를 포기한다는 말은 곧 생명을 포기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금 약평위 명단에 오르기를 희망하는 약제들은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간암 환자들이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는 임핀지 병용요법, 요로암 환자들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 파드셉, 희귀 변이 폐암 환자들의 목숨줄인 리브리반트, 삶을 위해 선택한 이식이 ‘죽음’ 같은 고통으로 이어지는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들의 희망 레주록까지, 기사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의 신약들이 약평위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환자들에게는 약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접근성’이다. 눈앞에 효과 좋은 치료제가 있어도 급여가 늦어지면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비용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 환자는 치료제가 있어도 선택권조차 갖지 못한 채 포기해야 한다. 경제성 중심의 약가 심의가 환자의 생존권을 갉아먹는 현실이다.

재정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환자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제도라면 ‘경제성’만이 아니라 ‘필수성’과 ‘대체 불가성’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특히 대체 치료제가 없거나 희귀 변이처럼 선택지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 자체의 보완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모든 신약을 동일한 잣대의 경제성 기준에만 맞추기보다, 희귀·난치질환, 대체 치료제 부재 영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 트랙을 마련하거나, 위험분담제·조건부 급여 등 환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약평위의 책상 위에 놓이는 것은 숫자와 그래프일지 몰라도,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하루라도 더, 한 달이라도 더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재정 안정’과 ‘환자 생명권 보장’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 국가 제도는 최소한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안전망이 돼야 한다. 환자에게 필요한 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며, 제도는 그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