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제조역량 강화'…정부·산업 협력이 핵심

의약품 제조 역량 격차 심화…신기술·시설 투자에 정부 지원 시급 "정보 격차 줄이며 생산시설·품질관리 동시에 관리해야"

2025-07-10     문윤희 기자
10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 안전망 구축을 위한 의약품 제조역량 강화방안 토론회[사진=뉴스더보이스헬스케어]

급변하는 글로벌 제약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제약산업이 제조공정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으나, 산업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 어려워 정부의 적극적이고 긴급한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국내 제약산업은 국산 원료의약품 생산기반 붕괴와 중국 의존 심화, 자동화·디지털화 미비 등의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어 정부의 설비 투자 및 R&D 지원 등 종합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박완갑 종근당바이오 대표는 10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 안전망 구축을 위한 의약품 제조역량 강화방안 토론회'에서 "글로벌과 국내 의약품 시장은 완제 분야에서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원료의약품 시장은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뒤처져 원료 조달 단계에 불균형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특히 국내 원료의약품 시장은 역성장 중으로, 국민 보건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위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가필수의약품은 생산량이 적거나 비용이 높아 자연적 공급이 어려운 품목으로, 치료 필수성이 높지만 생산 유인이 낮아 국가 관리가 필요한 품목이다.

올해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473종에는 항감염제, 항종양제, 신경계 등 다양한 분야의 품목이 포함돼 있으나,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상당수 품목이 국내에서 원활히 공급되지 못해 적절한 환자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특히 항생제 부문을 지목했다.

그는 "글로벌 항생제 시장의 경우 세파계와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질환 스펙트럼과 높은 안전성 덕분에 지속적인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국내는 중국 의존도가 높아 코로나와 같은 시장 변동, 원료 공급 불안정 시 국내 환자 건강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페니실린, 세파계 항생제 원료는 국산화가 미흡해 공급 차질 시 대체 수급이 어려운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페니실린·세파계 항생제의 핵심 원료와 공정은 글로벌 기준으로 71%가 중국에 집중돼 있으며, 페니실린·세파계 핵심 중간체인 6-APA와 7-ACA의 생산 거점 7곳 중 5곳이 중국에 위치해 있다.

박 대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지원과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생산기지 확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과 오스트리아는 항생제 공급망 위협에 맞서 설비 투자와 기술 보조금 등 실질적 지원으로 생산기지 설립을 촉진한 바 있다"며 "정부가 장기 수요처 보장 등을 통해 사업 안정성을 확보한 결과, 이들 국가의 성장세가 이어졌다. 한국도 이 사례를 참고해 생산 시설 보조금, 장기 수요 촉진 등 지속 가능한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다국가 공급망 협력체계를 구축해 장기적 공급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생산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28%를 기록했으나, 시장성 악화와 환경 규제로 인해 생산이 중단됐다"면서 "이제는 정부가 우선순위를 매겨 원료 확보와 생산시설 확보에 나서야 미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진현 서울대학교 교수는 '글로벌 제조혁신 기술동향과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공정시설의 글로벌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각 공정에 따른 글로벌 스탠더드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으로 나눠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

원료 부문에서는 △다양한 공정 개발에 따른 기술 확보 △수출규제 등 글로벌 공급망에 민감한 원료에 대한 대응 전략 마련 △GMP 허가를 위한 규정 준비가 필요하며, 완제 부문에서는 △인공지능 기반의 제조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 △GMP 규정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CGMP나 EUGMP는 규칙처럼 지켜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약기업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며 "향후 AI를 활용한 글로벌 수준의 공정 시스템 운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삼수 하나제약 사장은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 제약회사가 품질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며 "처벌 위주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품질혁신이 곧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식약처에서 QbD(품질고도화)를 강하게 권장하고 있지만 확산이 더딘 이유는 개발 기간이 길어져 약가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라며 "좋은 의약품을 개발해도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약가 우대나 허가 기간 단축 등 직접적인 인센티브 제공이 어렵다면, QbD를 초기에는 권장사항으로 운영하다가 점차 의무사항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며 "의무 전환 이전 단계로 제네릭 허가를 QbD 기반으로 개발할 경우 개발 기간만큼 허가 기간을 연장해주는 유연한 제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생산기지부터 스마트팩토리까지, 제약기업 투자 나섰지만 여력 부족"

이전평 대웅제약 생산본부 오송센터 센터장은 "국내 제약산업은 지속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쟁 심화와 규제 강화 속에서 제조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원료의약품 해외 의존도 증가, EU GMP와 FDA 기준 준수를 위한 품질관리 강화 등 도전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제조역량의 경쟁력 저하, 생산시설의 낮은 자동화·디지털화 수준 역시 중요한 문제"라며 "스마트팩토리 구축이 경쟁력 확보와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약산업에서 스마트팩토리를 구현하려면 품질·효율성·자동화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첨단 기술과 규제 준수가 필수"라며 "ICT 기반 디지털화와 자동화, 데이터 완전성을 위한 시스템 간 통합, 설계 기반 품질 고도화를 통한 공정 검증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에 따르면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한 기업의 경우 생산성은 40.2% 증가했으며, 제품 불량률과 생산원가는 각각 72.3%, 52.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센터장은 "많은 기업들이 RPA 기반 품질문서 자동화, QbD 및 CPV 적용 등을 시범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나,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국내 현실 속에서는 기술 개발과 표준화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소진언 LG화학 CMC연구소 소장은 연속 제조 공정(Continuous Manufacturing) 도입을 위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 소장은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연속 공정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으나, 실제 적용 사례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기술 인프라 지원, 보조금 및 금융 지원 등 정부의 정책적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속 공정 도입 가속화를 위해 데이터 표준화, AI 기술 신뢰성 확보, 재정 지원 확대, 규제과학 기반 정책 수립 및 전문 인재 양성이 병행되어야 한다"며 정부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서경원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는 제조혁신 기술 도입의 어려움으로 예산 부족과 전문인력 부족을 꼽았다.

서 교수는 "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술 도입에 따른 예산이 부족하며, 제조공정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 역시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한 "식약처도 규제 유연성을 고민하고 있지만, FDA나 ICH 등의 기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산업계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춘래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과장은 규제기관의 입장에서 "AI GMP 초안과 GF 기준, 다양한 규제 초안을 검토 중이며, 산업계 의견도 청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공공제약기업을 만들지 않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민간 보전 방안이 필요하다"며 "제조역량은 단순히 민간에 맡길 문제가 아니며,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입법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AI는 제약기업 혁신의 열쇠"라며 "제조공정 혁신은 단기적으로 비용 부담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용 절감과 품질 고도화의 길이므로, 국회 차원의 지원 방안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공동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