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 “한국 신약개발, 모달리티 경쟁력으로 중국 앞설 기회 있다”
“신약 특화 정책·자본시장 활성화 필요…1650개 파이프라인 ‘선택과 집중’해야”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새로운 치료 기술(모달리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중국보다 앞설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관순 지아이디파트너스 대표는 지난 22일 제약바이오기자단과 인터뷰에서 “중국이 글로벌 임상 중심 국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모달리티 개발에서 경쟁력이 있다”며 “정부가 신약 개발에 특화된 정책을 추진하고 산업 생태계를 강화한다면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창립 80주년 기념사업 추진 미래비전위원장을 맡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장기 발전 전략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협회는 ‘비전 2030’을 통해 ▲신약개발 선도국 도약 ▲글로벌 협력 모델 확대 ▲제조 경쟁력 강화 등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글로벌 신약 개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공지능(AI)이 신약 개발 전 과정에 적용되고 있으며 항체약물접합체(ADC),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mRNA, 프로탁(PROTAC), 방사성의약품(RPT), 다중항체 등 새로운 모달리티가 차세대 치료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연구 협력을 확대하고 있고 각국 규제기관도 신속 심사 제도를 도입해 신약 허가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이런 변화 속에서 중국 제약사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의 베이진, 헝루이 등 제약기업들은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며 세계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반면 국내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글로벌 기업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국내 상위 5대 제약사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평균 약 2000억 원 수준으로 글로벌 상위 5대 제약사의 평균 투자 규모(약 22조 원)와 큰 격차가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바이오기업 베이진의 연간 연구개발 투자액도 약 2조 원에 달해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투자 규모를 크게 웃돈다.
이 대표는 국내 신약 개발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 개발 중인 신약 파이프라인은 약 1650개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약 후보 물질이 많다는 것이 과거에는 긍정적인 신호였지만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긍정적 요소로는 글로벌 기술수출 확대와 바이오시밀러 경쟁력을 꼽았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은 현재까지 38개로 매년 1~2개 수준의 신약이 허가를 받고 있다.
또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미국과 유럽에서 다수 허가를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신약 개발 위탁생산(CDMO)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확보하고 있어 신약 개발 인프라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그는 자본시장 위축과 인력 부족을 산업 발전의 주요 한계로 꼽았다.
이 대표는 “최근 벤처캐피털의 신약 개발 투자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며 “신약 개발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유망 파이프라인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신약의 혁신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글로벌 신약 개발에 대한 지원 정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처럼 신약 개발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연구개발 투자가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문제도 과제로 지적했다. 바이오헬스 분야 신규 인력 수요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약 1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급 가능한 인력은 약 3만4000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새로운 모달리티 분야 전문 인력 부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국가 차원의 신약 개발 전략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신약 개발 아젠다를 상설적으로 운영하고 실행 조직을 통해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국가 차원의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 과제를 선정하고 자원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바이오벤처와 제약사의 협력 모델인 ‘이어달리기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바이오벤처가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면 국내 제약사가 임상 초기 단계까지 개발을 진행하고 이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이전하거나 공동 개발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이 같은 협력 구조가 자리 잡으면 매출 1조 원 규모의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과 함께 매년 1~2개의 글로벌 신약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