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혁신의료기기 ‘선진입·사후평가’…속도·안전·재정 3대 변수 부상

신의료기술평가 대기 없이 시장 진입 허용 추진…국산 경쟁력 강화 의도 치료재료 4조 시대 맞물려 공급·재정 관리 병행 과제로

2025-04-16     이창진 기자

[이슈진단=혁신 신의료기기 규제 완화] 정부가 혁신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국내 의료기기 규제체계가 근본적인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신의료기술평가를 사전에 완료해야 했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일정 요건을 충족한 의료기기에 대해 의료현장 선진입을 허용하고 이후 평가를 진행하는 ‘선진입·사후평가’ 체계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전경 모습. [사진=보건복지부]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강화된 임상평가를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받은 의료기기에 대해 신의료기술평가 이전이라도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올해 하반기 중 추진한다. 해당 제도는 일정 기간(최대 3년) 의료현장에서 사용을 가능하게 한 뒤 건강보험 등재 단계에서 신의료기술평가를 실시하는 구조로 설계된다.

신의료기술평가 ‘선(先) 통과’ 해체…현장 진입 속도 높인다

이번 제도 개편은 기존 규제체계로 인해 혁신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이 지연된다는 산업계와 의료현장의 문제 제기가 누적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혁신 의료기기 신속한 시장진입 체계’를 통해 일부 선진입을 허용해 왔지만, 대상과 절차가 제한적이어서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가 이어져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평가유예 의료기술 대상 확대와 제도 정비를 병행해 실질적인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복지부는 현재 관련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며, 입법예고와 부내 규제심사를 마친 상태다.

상반기에는 환자 동의서 의무화, 부작용 발생 시 퇴출 기전 마련 등 안전관리 장치를 구체화하고, 하반기부터는 강화된 임상평가를 통과한 혁신 의료기기에 대해 기존 기술 여부 확인을 거쳐 즉시 의료현장 투입을 허용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혁신 의료기기 혜택을 국민이 보다 조기에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의료기기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계 “데이터 축적·글로벌 진출 기회”…기대감 확산

업계는 이번 제도 전환을 ‘시장 진입 지연 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의료기기 기업들은 선진입 허용이 초기 시장 형성과 실제 임상 데이터 축적을 동시에 가능하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품이 의료현장에서 사용되면서 데이터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사용 경험이 기술 고도화와 품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후평가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면 산업 성장 기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혁신 의료기기의 경우 임상 현장에서의 실제 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가 글로벌 규제 대응과 시장 진입에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이번 제도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전성·재정·공급관리…‘사후관리 역량’이 성패 좌우

다만 제도 전환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쟁점은 안전성이다. 선진입 허용으로 인해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의료기기가 실제 환자 치료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환자 동의 절차를 강화하고, 이상 사례 발생 시 신속히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는 관리 체계를 마련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후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제도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 역시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입을 통해 의료기기 사용이 빠르게 확산될 경우, 향후 급여화 과정에서 재정 지출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검증하는 사후평가가 형식적으로 운영될 경우 재정 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치료재료 시장 급성장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치료재료 품목 수는 2018년 2만9869개에서 2020년 3만2598개, 2022년 3만5570개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청구금액도 3조2085억원에서 3조8765억원, 4조4179억원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생산·수입 중단 보고 대상 의료기기를 중심으로 공급 현황과 청구자료 증감률을 분석하고, 식약처와 협의를 통해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공급 불안정이 발생할 경우 가격 조정 등 신속 대응을 통해 시장 안정과 환자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을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 재설계’로 평가한다. 사전 규제 중심에서 사후 관리 중심으로 전환되는 만큼, 평가유예 기준의 명확성, 사후평가의 실효성, 재정 통제 장치가 제도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