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정상화·환자기본법 제정 시급…복지부 ‘환자정책국’ 신설해야”
환자단체, 대선 앞두고 정치권에 환자 정책 공약 요구 “의정 갈등 1년 넘게 지속…환자 생명 위협받는 상황”
환자단체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정치권을 향해 의료 정상화와 환자 권리 강화를 위한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환자 권리 보호를 위한 ‘환자기본법’ 제정과 보건복지부 내 ‘환자정책국’ 신설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대표 안기종)는 7일 성명을 통해 “대선을 준비하는 각 정당이 의정 갈등을 해소하고 의료를 정상화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환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최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해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당연한 결론”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환자 권리 정책 논의가 다시 본격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성명에서 “지난 4개월 동안 대한민국은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으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며 “이번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헌법과 민주주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정치권은 국가적 혼란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보건의료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며 “특히 의정 갈등으로 인해 환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는 현재 이어지고 있는 의료 공백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 발표 이후 시작된 의정 갈등은 1년 이상 지속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환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2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목표로 의료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같은 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의료계와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약 1만 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고, 의대생들도 집단 휴학에 나서는 등 의료 현장의 혼란이 이어졌다. 환자단체는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중증 환자와 응급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중증 질환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고, 응급 환자들이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겪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며 “의정 갈등으로 인해 환자의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의료개혁 정책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8월에는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을 발표했고, 올해 3월에는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도 공개했다.
1차 실행방안에는 필수·지역 의료 강화와 전공의 수련 혁신,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필수 의료 수가 정상화,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위해 5년간 국가 재정 10조 원과 건강보험 재정 10조 원 등 총 20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이어 발표된 2차 실행방안에서는 향후 3년간 약 2조3000억 원을 투입해 지역 병원의 필수 의료 기능을 강화하고,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개혁,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 구조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그러나 환자단체는 이러한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정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회는 “지난 1년여 동안 의료계는 환자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정부와 갈등을 이어 왔고, 정부 역시 환자를 보호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사실상 의료 공백 상태 속에서 방치돼 왔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의 권리를 명확히 규정한 ‘환자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기본법은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환자의 권리와 정책 체계를 제도적으로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법안에는 환자와 환자단체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환자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환자 정책 기본계획 수립, 환자 정책 실태조사와 영향 평가, 환자 정책위원회 설치, 환자단체 참여 보장, 환자통합지원센터 설치 등의 내용도 담겼다.
연합회는 “환자가 보건의료의 주체로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환자기본법 제정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환자 정책을 전담할 정부 조직 신설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보건복지부 조직 내에 ‘환자정책국’을 신설하고 환자정책과, 환자안전과, 환자피해구제과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합회는 “정부 조직에는 장애인 정책, 노인 정책, 아동 정책 등 다양한 정책 전담 조직이 있지만 환자 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은 없다”며 “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정책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의정 갈등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일부 환자단체에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 의견을 수렴했지만 경험과 인력 부족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환자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회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환자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채택할 것도 요구했다.
연합회는 “기후 재난과 감염병 대유행 등으로 누구나 언제든 환자가 될 수 있는 시대”라며 “환자가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두 달 뒤 출범할 새 정부가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 중심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하기를 기대한다”며 “환자기본법 제정과 환자정책국 신설에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 한국파킨슨희망연대 등 10개 환자단체가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