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발 복지부 보건실장 해임, 의대 증원 비극 서막이었다
작년 임인택 실장 중도 퇴직 후 숨죽인 세종청사…대통령실 정보 유출 내사 '후폭풍' 설득과 협의 열정 사라진 고위공무원들 "다음 정부에서 명확한 사실 규명 되짚어봐야"
올해 2월 의과대학 2천명 증원 발표 이후 의료생태계 혼란이 12월까지 지속되고 있다. 의대생과 전공의, 임상교수, 봉직의, 개원의 등 의료계 모든 직역이 한 치 물러섬 없는 윤정부 강경 기조에 맞서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11개월째 지속되는 의정 갈등을 답답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시계를 2023년 6월로 되돌려보자.
당시 복지부 세종청사에 비보가 전파됐다.
보건의료 정책을 진두지휘한 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행시 37회, 서울대 영문학과)이 보직 해임된 것이다.
대통령실은 6월 4일 주말 저녁 임인택 실장을 보직 해임했다. 국장에서 실장 승진 10개월 만에 예상치 못한 인사 발령이었다.
임 실장은 인사 조치 이틀 전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지역의료 균등 발전을 위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 조정과 필수 진료과 정원 확대 등 윤정부 국정과제 실행을 위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복지부 내부도, 임인택 실장 자신도 보직 해임 조치를 예상하지 못한 셈이다.
실장급 보직 해임 조치는 초유의 사태였다.
임인택 실장(1971년생)은 대통령실 인사 조치 얼마 후 복지부를 퇴직했다. 50대 초반 25년 넘는 공무원 생활을 중단한 것이다.
복지부 안팎에서 문책성 인사라는 다양한 풍문이 돌았으나 후속 인사로 세종청사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임 실장과 호흡을 맞춘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행시 38회, 연세대 경영학과)은 같은 해 10월 정신건강정책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간이 경과하자 임 실장 인사 조치 내막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사태의 발단은 대통령실 의대 증원 논의에서 출발한다.
대통령실에서 의대 증원을 위한 회의를 했다는 사실이 대중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윤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실의 비공개 회의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직후 대통령실은 정보 유출 색출자 물색을 위한 내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 참석자와 함께 회의 일정, 내용을 알 수 있는 복지부 실국장 등 간부진 휴대전화를 조사했다는 후문이다.
임인택 실장의 보직 해임 조치는 조사 이후 나왔다.
내사 결과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호남 출신인 임인택 실장의 국회 등 대외 활동 정황이 대통령실 정보 노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다시 임인택 실장 인사 조치 시점으로 돌아가자.
당시 복지부는 필수지역의료 살리기 국정과제를 위해 의료계와 협의를 지속했다. 의대 증원은 예상했지만 정확한 증원 숫자는 베일에 가려진 상태였다.
임 실장의 갑작스런 보직 해임 후 복지부는 동장군으로 변했다.
의대 증원 관련 모든 내용은 함구됐다. 대통령실의 인사권 발동에 세종청사가 얼어붙은 것이다.
올해 2월 보정심에서 조규홍 장관의 의대 2천명 증원 발표 전까지 복지부 실국장과 과장 등 모든 간부진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어찌 보면 장차관 등 일부를 제외하고 간부진조차 정확한 증원 규모는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중앙부처 실장과 국장은 고공단(고위공무원)으로 대통령 임명이다. 대통령실에서 복지부 실국장 승진과 부서 이동, 보직 해임 등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보건의료정책실장 해임 조치에 따른 낙마는 복지부 공무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줬다.
의대 2천명 증원 발표 이후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불거진 의정 갈등에서 복지부의 법과 원칙에 따른 강경 대처 방침은 대통령실의 강력한 인사권 발동 여파가 적잖게 작용했다는 합리적 의심으로 귀결된다.
박민수 제2차관이 일일 브리핑에서 "모든 책임은 장차관이 진다", 조규홍 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대 증원 2천명 결정은 내가 했다" 등 예상치 못한 답변은 복지부 공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심정이 일정부분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과거 복지부는 달랐다.
문정부 시절 의대 400명 증원 발표 전까지 청와대와 복지부는 협의를 지속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1000여명의 증원을 요구했으나 복지부 실국장은 의료 환경과 의료계 정서를 고려해 과도하면서 증원 규모를 400명으로 조정했다.
젊은 의사들과 의사협회 반발 그리고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의대 증원 추진은 잠정 유예로 일단락됐다.
대통령실을 설득 협의하면서 증원 규모를 조정한 복지부 고위 공무원들의 열정과 기백은 핵심 실장을 겨냥한 사실상 퇴출 인사 폭탄에 사그라졌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중견 인사는 "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 보직 해임 인사 이후 복지부 내부 상황은 달라졌다. 인사와 예산으로 움직이는 관료조직이 대통령실의 인사 카운터펀치에 숨 죽이 듯 조용해졌다. 기재부와 수사기관은 퇴직 후 다양한 출구가 있으나 복지부는 상대적으로 폭과 기회가 좁다. 실국장은 퇴임 후 산하기관이나 보건의료단체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정가에 정통한 의료계 다른 인사는 “실장 보직 해임과 대규모 의대 증원 결정 이어진 강공책 등의 명확한 사실 규명은 다음 정부에서 되짚어 봐야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 관여한 복지부 고위공무원들이 퇴임 후 사태의 전말을 이야기할지, 속으로 삭힐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완전한 비밀은 없다. 향후 윤정부 시절 복지부 굴곡의 시간이 어떻게 각인되고, 기록될지 공무원들에게 달려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