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업 논의없는 한방첩약 급여 '독이 든 성배'
의-한의 갈등 표면적 현상…보장성 강화 눈앞 성과 집착
한방첩약 급여 시범사업을 두고 의한〮의간의 갈등이 격렬하다. 한방 의약분업이라는 핵심 이슈는 마냥 어렵다고 접어두고 보장성 강화라는 명분 하나에 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서두르는 건 아닐까. 자동차보험과 산업재해보험에서도 급여되는 마당에 건보 적용은 적절한 시점의 당연한 수순으로 봐야 할까. 표면적인 의한〮의간의 갈등을 살피고 한방분업과 분리된 한방첩약 급여의 위험성을 진단해 본다.
월경통 등 한방 첩약 급여 500억원대 시범 사업
의한간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한방 첩약 건강보험 급여 시범사업의 시행 여부가 오는 24일 열리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시범사업에는 연간 건보재정이 500억원 투입된다. 오는 10월부터 시행, 2023년 12월까지 3년간 총 1500억원 수준의 규모다.
대상 질환은 월경통, 안면신경마미, 뇌혈관질환 후유증 등으로 정해졌다. 보험이 적용되면 환자의 부담이 절반으로 줄게 되며 이는 보장성 강화라는 정부의 주된 정책흐름과 괘를 함께 한다.
검토되는 수가는 첩약 한 제(10일분)당 ▲심층변증·방제기술료 3만 2490원 ▲조제·탕전료 3만 380원~4만 1510원 ▲약재비 3만 2620원~6만 3010원(실거래가 기준) 등이다. 한 제에 14~16만원 수준이다. 즉 건보재정과 환자가 각각 7~8만원씩 부담한다는 것이다.
첩약 관련 현행 급여가 이뤄지고 있는 자동차보험과 산업재해보험은 2014년부터 동일한 기준으로 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첩당 6690원이고 탕전료는 670원이다. 10첩이 한 제이니 건보 시범사업이 시행된다면 급여관련 세부내용은 다르지만 건보, 자보, 산재 모두 재정부담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수준이 된다.
또 시범사업기간 동안 한의사는 월 30건, 연간 300건 이하로 처방이 제한되는 조건이 있다.
정부는 한방 첩약 급여에 대한 소비자단체들의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돼 있다며 사업진행 명분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판단해 강행할 가능성이 높게 예측되고 있다.
급여시장 확대 꼼꼼하게 준비한 한의계
한의계의 한방첩약 급여 시범사업은 자동차보험과 산업재해보상보험 등 급여시장에서의 규모 확장과 흐름을 같이한다.
먼저 자동차보험에서 한방병의원을 찾은 환자는 양방병의원의 규모를 지난해 넘어섰다. 점유율은 54.9%다. 열 명중 다섯 명이상이 교통사고로 한방병원을 찾는다. 자보청구 기관도 한방이 더 많다. 다만 중증보다 경증환자 중심이라 진료비 점유율은 43.2%였고 입원환자 점유율은 41.4%로 더 낮다.
산재보험도 한방 진료가 확대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지정병원 중 양방 한방 청구자료를 별도로 구분해 발표하지 않지만 지정병의원 증가추이는 한방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방병원 203곳, 한의원 782곳이 지정됐다. 다만 양방은 의원 2287곳 등으로 산재 쪽은 격차가 있다.
다음은 한 기초자치단체 보건소의 지난해 사업보고 내용중 일부다. 한의학 건강증진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 월경통 관리사업’, ‘어르신 한의약 건강관리교실’ 등을 진행해 상당한 호응을 끌어냈다.
한방 첩약 급여 관련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꼼꼼하게 준비해왔던 한의계가 펼친 노력의 일면을 보여준다.
의료계와 약업계까지 뭉친 사업반대 연합전선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약사회는 물론 학술단체인 의학회와 의학한림원까지 나서 지난 17일 한방첩약 시범사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과학적 검증도 급여화 원칙도 없는 한방 첩약 급여화는 그간 보여주던 정부의 건보 정책기조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부문에 대해 강한 의구심과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외 시범사업 3개 질환 선정의 부적절한 부문과 수가 책정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직능갈등은 대부분 한정된 건보 재정에 대한 기득권으로 읽히기도 하고 보장성 확대 명분으로 밀려 직능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반대의견을 제시할 때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경향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이번 첩약 관련 갈등은 양보할 의지가 없어 보일 만큼 강경한 입장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한약사 빼고 한의사만 참여하는 ‘시범사업’
이미 다뤄진 쟁점을 배제하고 보장성 강화라는 명분이 타당한지 검토해 본다.
보장성 강화 측면에서 보면 접근성과 편의성을 제한하는 이번 시범사업에 약간의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한의사만 참여하는 시범사업보다는 한약사 또는 한약조제약사의 참여를 통해 접근성을 더 넓혀 시범사업을 진행, 보안점을 찾아야 하는게 보편적인 시범사업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냐는 점이다.
한약사와 한약조제약사 약 2만 5천여명은 1995년 합의에 따라 백방의 처방조제가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시범사업이후 백방을 건보급여에서 완전히 배제할 계획이 아니라면 하나의 질환 정도는 포함돼 시행될 수 밖에 없는게 현 시범사업 구조다.
예로 한방 부인과 3대 처방 중 당귀작약산, 궁귀교애탕은 백방중의 하나고 여성의 생리관련 질환중 월경통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적응증인 빈혈 또는 하혈 등이 고려될 여지는 없었는지 납득이 쉽지 않다.
보장성 확대 위해 멀어져 가는 한방 의약분업
첩약 시범사업의 흐름은 분명 한방 의약분업과 정반대되는 방향성을 갖는다.
분업이 고려됐다면 수가 체계는 달리 마련돼야 한다 한의사 처방, 한약사 조제 시 높은 보상을 해주는 임의 선택분업 방식이 고려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는 한의사의 처방조제 수가만 만들어 시범사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한방 분업을 시행한다면 첩약 관련 기득권을 갖게 된 한의계의 반발은 당연해지는 상황임에도 불구 이에 대한 대안이나 언급이 전혀 없다.
시범사업 이후 첩약의 사업범위를 확대해 본 사업이 진행된다면 앞서 살핀대로 임의 선택분업 형식을 도입할 것인지 한약조제약사와 한약사의 건보 급여를 의약분업 이전 상황처럼 임의조제 형식으로 적용할 것인지도 논의가 필요하다.
만약 이 과정에 대한 계획이 없다면 시범사업은 한의사 첩약의 독점을 용인하고 한방의약분업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다름이 아니다. 결국 이 같은 논의가 선행되지 않은 첩약의 건보 급여 시범사업은 향후 한의계에는 '독점'이거나 ‘독이 든 성배’ 일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방 의약분업 계획을 고려하고 첩약 건보급여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면 의-한의간의 현재의 갈등은 의사, 약사, 한약사와 한의사 간의 다자간 갈등만 양산할 여지만 높아진다.
당장 보장성 확대에 집착해 향후 벌어질 난맥상에 대해 눈감는다면 한방분업의 길은 더 험난해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