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기 첫 발작 후 평생 지속…'경련 발작' 관리가 최우선 과제
성장기 따른 재활 지원 턱없이 부족…난제 속 의료파업으로 '치료 부담' 가중
드라벳증후군은 영아기에 발생되는 심각한 형태의 뇌전증으로 인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 발작의 시기는 생후 2개월~16개월 사이에 나타난다. 환자에 따라 열에 의한 경련, 비열성 경련, 전신 경련 등 다양한 형태의 경련을 동반하며 장기적이고 복잡한 여러가지의 신경발달 문제를 동반한다. 때문에 드라벳증후군을 앓는 환아는 언어 발달이 늦거나 운동 발달 지연 현상을 겪게 된다.
질병청에 따르면 드라벳증후군 진단 기준은 △18개월 이전에 경련이 발생하면서 두 개 이상의 항경련제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2세 이후에도 발작이 지속되는 난치성 뇌전증 및 발열이나 감염, 예방접종에 의해 유발되는 경련인 경우 △2회 이상의 편측 강직간대경련 혹은 전신 강직간대경련을 보이면서 발생 전 정상 인지 및 운동 발달을 보이는 환자에서 SCN1A 유전자의 병적 변이가 확인될 경우 받는다.
드라벳 증후군의 유병률은 전세계적으로 2~4만명 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데, 국내 유병률은 현재까지 조사된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는 상황이며 2022년 극희귀질환으로 지정된 바 있다. 드라벳 증후군 환자의 91%는 최소 1개 이상의 동반 질환을 겪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3가지 이상의 신체 혹은 정신적 동반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드라벳 증후군 환자 중 자폐증과 ADHD를 가진 비율은 각각 42%와 24%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드라벳 증후군의 위험성은 발작이 일정기간 이상 지속되는 상태인 ‘발작 지속상태(status epilepticus, SE)’와 야간 발작, 발작 관련 사고, 그리고 발작 중 예상치 못한 돌연사 등에 있다. 이러한 위험들로 인해 드라벳 증후군 환아들은 항상 조기 사망에 노출돼 있다. 전체 환자 중 15%가 유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사망하며, 특히 2세에서 7세 사이의 아이들에게서 사망 위험이 제일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이 드라벳 증후군은 환자의 예후 개선을 위한 신속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무척 중요한 질환이지만 진단부터 미충족 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드라벳 증후군은 진단 지연이 빈번히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오진으로 인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진단 방랑'을 경험하게 되며 발병부터 진단까지 평균 7.4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진단을 받더라도 국내 드라벳 증후군 관리 환경은 환아와 보호자들의 삶의 질 개선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치료 목표인 경련 발작 조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태다.
드라벳 증후군의 치료 목표는 항발작약물(anti-seizure medication, ASM)을 사용해 발작 빈도를 줄이고 동반 질환을 관리하며, 더 나아가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 개선 정도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드라벳 증후군 치료에서는 돌연사 및 삶의 질 저하와 밀접한 증상인 ‘경련 발작’을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꼽히고 있지만 문제는 드라벳 증후군이 약물 난치성 질환으로, 기존 뇌전증 치료에 사용되는 항발작약물 옵션들로는 발작 빈도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스티리펜톨(Stripentol), 카나비디올(Cannabidiol) 역시 발작 조절에 한계가 있어, 여전히 드라벳 증후군 환자들은 치료에 있어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열악한 수준의 관리 환경 속에서, 국내 드라벳 증후군 환아들의 보호자와 가족들은 그저 ‘오늘도 아이가 살아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감사하며 절망적인 상황을 해쳐 나가고 있는 상태다.
뉴스더보이스는 드라벳 증후군의 사회적 인식 개선과 진단과정, 치료 환경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최근 드라벳 증후군 환아의 가족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아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라는 윤석열 정부의 발표에도 극희귀질환인 드라벳 증후군 환아와 가족들은 그 영향권 밖에 서 있다. 소아과 전문의 지원자의 극감과 응급실 뺑뺑이가 현실화된 시점에서 진행된 이번 인터뷰를 통해 우라니라의 극희귀질환 지원의 한계점과 환아와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짚어 봤다. 인터뷰 질의응답 내용은 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과감없이 원문을 그대로 올린다.
-드라벳증후군이라는 극희귀질환을 둘째 아이가 앓고 있다고 들었다. 진단을 받기 가지의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드라벳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은 열에 취약하다. 열성 경련처럼 발열을 동반한 경련성 발작을 보인다. 그런데 일반적인 열성 경련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떨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아이의 첫 경련 증상은 생후 7개월 차에 나타났는데 일반적인 열성 경련과는 달리 팔만 위 아래로 움찔거리고 떨리는 모양이었고, 간혹 다리가 몇 번 튀기도 했다. 그때도 팔을 잡아주었는데 경련이 멈추지 않아서 119에 의료 상담 전화를 걸었다. 119에서 손으로 잡아도 경련이 멈추지 않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응급실에 바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서 체온을 쟀을 때 37.8도가 나왔고, 항경련에 효과가 있는 안정제 주사(로라제팜)를 맞고 경련이 멈췄다. 이어서 뇌파와 MRI 검사를 했는데 정상이 나왔다. 병원에서는 미열이 있는 상태에서 부분 경련을 보이는 것은 좋은 양상이 아니라며, 우선 복합 열성 경련 같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소견을 들었다. 그 이후에도 감기에 걸린다거나 열이 오를 때마다 전신이 아니라 부분 경련이 나타나곤 했다. 양상이 계속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37.8도가 되면 경련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돼서 37.3도 정도만 돼도 해열제를 미리 먹여서 경련을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해보고, 해열제가 듣지 않아서 열이 오르면 또 경련이 일어나는 일들이 반복됐다. 경련이 한 번 발생하면 오래 지속되는 편이라 꼭 병원에 방문해 경련을 멈추는 주사를 맞아야지만 증상이 사라졌다.
작년 초에도 열이 올라서 응급실에 방문했다. 응급실에서 아이 상태를 설명했더니 병원에서 상태를 조금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고, 입원해서 상태를 보는 와중에 경련이 발생했다. 항상 기본으로 맞는 주사를 맞혔는데도 경련이 멈추지 않아서 발프로산나트륨 수액을 맞고서야 경련이 멈췄다. 경련이 40분 넘게 지속됐고 멈추기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겨울에는 감기에 걸릴 확률이 높고, 그러면 열이 오르게 되니 그때 의료진으로부터 겨울만이라도 항발작약을 먹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약 얘기가 나와서 이전에 뇌파랑 MRI 검사가 다 정상이었는데 추가로 더 할 수 있는 검사는 없는지 물었고, 유전자 검사를 해볼 수 있다고 해서 혈액 기반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3개월 동안 항발작약을 먹였고, 검사 결과 SCN1A 변이가 나와서 이후로도 계속 항발작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때도 유전자 돌연변이만 확인됐지 드라벳 증후군이라고 확실히 진단받은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해당 변이를 검색했을 때 드라벳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나오길래 그 병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드라벳 증후군은 아니고 SCN1A라는 유전자 변이가 나온 것 뿐이니 조금 더 지켜보자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열성 경련에서 조금 더 범위가 넓은 ‘경련’으로 분류돼서 처치를 받게 됐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고양시에 거주했었기 때문에 그쪽 병원을 다녔다. 그러다 작년 4월, 주치의가 사직을 해버려 새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새 전문의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주변 병원의 소아신경과에는 담당의가 한 명밖에 없는 경우도 많고, 응급실도 자주 찾게 될 텐데 응급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지 여러 고려사항들을 따지다가 연세대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을 결정하게 되었다. 여러 선생님 중에서도 그나마 제일 빠르게 볼 수 있는 분을 추천받아서 4월 말에 지금 주치의를 뵐 수 있었다. 그 분은 아이의 경련 양상을 들어보시고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보고서 바로 드라벳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아이의 첫 경련 이후로 약 6개월 만인 생후 13개월 차에 진단을 받은 것이다.
-진단을 받은 후에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그리고 그때 당시 제일 크게 느껴졌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고 여러 정보를 검색해봤기 때문에 복합 열성 경련을 넘어서 최악의 경우 드라벳 증후군을 진단받을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여러 질환 단계를 보면서 어느 정도겠구나 생각만 했는데 최종적으로 드라벳 증후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무리 예상을 했어도 조금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경련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성장하면서 발달장애, 지적장애 등 다양한 문제가 동반될 수 있는 질환인지라 어떻게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이 생겼고 다른 희귀질환 부모들이 그렇듯이 나중에 아이에게 장애가 생겨 서로 힘들게 사느니 빨리 마무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첫째 아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뱃속에서 잘못됐을 수도 있는데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달리 조금 더 특별한 것 뿐이라고 생각하고 잘 키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성인이 돼서 본인 밥벌이 하고, 부모 손 빌릴만큼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평범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프고 나서는 지금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 중이다.
특히 둘째는 남편과 함께 우리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아이이니 최대한 보호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 도우면서 잘 헤쳐나가 보자고 서로를 격려 중이다. 원래는 아이들이 다 큰 이후인 먼 미래를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당장 오늘 이 아이가 경련을 하지 않고 무탈히 하루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첫째도 물론이고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고 화목하게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하면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 중이다.
결코 하루이틀만에 쉽게 갖게 된 마음가짐이 아니다. 처음에는 무기력함이 정말 컸다. 진단을 받았던 당시에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 옆을 지키면서 개인 생활이 없다시피했다. 전원하면서 병원과의 거리를 고려해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예전 살던 동네에서는 병원과 집만 계속 반복해서 전전했다면 지금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를 산책하며 카페도 구경하고, 혼자 맛있는 것도 사먹어 보고,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바깥을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기분전환에 도움이 많이 된다. 확실히 환경이 바뀌게 되니 이사 온 후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병원 근처로 이사를 결심하신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지요.
이사 오기 전 아이가 경련으로 쓰러져 구급차를 불러야 할 일이 있었다. 이전에 살던 곳도 병원과 소방서가 근처에 있긴 했는데, 당시 구급차가 20km 떨어진 곳에 있어 가는 동안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보통 청색증이 같이 오는 편이라 급하게 병원을 가야 하니 경찰이라도 부르려고 하다가 소방서에서 다시 전화가 와서 복귀 중인 구급차가 있으니 그 차를 타라고 해서 다행히 늦지 않게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또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직접 가더라도 최대한 빠른 시간 이내에 병원에 갈 수 있는 곳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됐다.
-드라벳 증후군은 치료도 만만치 않은 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자녀 분은 치료를 어떻게 이어나가고 계신가요?
이전에는 열이 조금 오른다 싶을 때 37.5도 전후가 되면 해열제를 기본으로 먹여서 경련을 조금이라도 관리하려 했다면 지금은 경구 안정제(벤조디아제핀)를 같이 먹이고 있다. 열이 점차 오르는 것이 아니고 37.5도에서 갑자기 38도로 확 올라서 경련으로 이어지다 보니 해열제만으로는 관리가 되지 않을 때 안정제를 같이 먹이면 열이 덜 치솟는 편이다.
또, 경련이 일어났을 땐 병원에서 받은 응급 주사약으로 처치를 한다. 항문으로 투약하는 주사제인데 그로써 경련이 멈추면 일단 지켜보고,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병원에 간다. 한 번 투여하고 멈추지 않으면 두 번까지는 투약하라고 안내를 받았는데 안정제이다 보니 약효가 워낙 강해서 심박수가 떨어지고 호흡이 멈추기도 하는 부작용이 동반된다. 아이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깨워가면서 투약하라는데 말로는 쉽지만 그 상황에서 쉽게 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하루 두 번, 12시간 간격으로 두 종류의 항발작약을 먹고 있고 하루에 한 번 간 보호제도 함께 먹고 있다. 그 중 이전부터 먹던 발프로산나트륨 계열 경구제는 전원 이후에 최대 용량으로 증량을 한 적도 있다. 최대 용량을 먹일 땐 39도까지 열이 올라서야 경련이 일어나는 편이었는데, 약의 주요 부작용이 혈소판 감소여서 수치가 너무 떨어져 용량을 줄였다. 용량을 줄이니 또 38도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드라벳 증후군 아이들한테는 식이요법이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다양한 맛을 알기 전에 식이요법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생후 15개월 차인 작년 6월부터 케톤식이요법의 한 종류를 시도 중이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을 늘리는 식이요법으로, 탄수화물로 얻는 포도당 대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식단이다.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되면 몸 안에서 케톤체가 만들어지고, 뇌가 케톤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서 항경련 효과를 얻는 것이다.
케톤식이요법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처음에는 당지수가 낮은 식품 위주인 저당지수 식사요법을 시도했다가 두 달만에 다시 경련이 시작됐다. 아이와 안 맞는 것이 있었는지, 식단 중 뭔가 잘못 관리되었는지 케톤 수치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당시 병원에서는 약을 하나 더 추가하거나 식이 단계를 올리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식이 단계를 올려서 지금은 앳킨스 식이요법을 1년 가까이 이어가는 중이다. 케톤식이요법의 지방:단백질+탄수화물 비율이 4:1이라면 앳킨스는 1.66:1로 지방 비율을 조금 더 낮춘 식단이다.
식이요법이 드라벳 증후군의 주요 관리 방법 중 하나인 데다가 약물보다 부작용이 덜해서 선택한 것인데 다행히도 아이에게 잘 맞는 편이다. 이전에는 경련이 한 달에 1~2번 크게 오곤 했는데 이사 온 뒤로는 두 달에 한 번, 그리고 식이요법 시작 후에는 지난 7월까지 경련 없이 잘 지냈다. 그러다 감기에 심하게 걸려 열이 치솟았는데 그때 7개월 만에 경련을 했다. 그게 계기가 됐는지 일주일 후에도 다시 경련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약을 증량했다. 또 지난 달 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놀다가 열이 났는지 경련을 한다고 연락을 받았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했더니 백혈구 수치가 올랐다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이 또 날 수도 있으니 입원하면 좋을지, 바로 약을 투여할지 물어봤는데 조금 더 지켜봤으면 하는 마음에 입원을 결정했다. 그 날 밤에 위급한 상황이 생겼다. 급성후두기관지염인 크루프가 발생해서 경련도 멈추지 않고, 산소호흡기도 연결하며 큰일을 치뤘다. 4~5일 동안 입원을 해야 했고 퇴원 후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또 다시 조금 괜찮아진 상태다.
감기 때문에 경련이 다시 생기긴 했어도 우리 아이 같은 경우에는 식이요법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드라벳 증후군 아이에게 식이요법이 다 효과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예 식이요법을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약으로도 처치가 안 될 때 최후의 방법으로 식이요법을 한다고 한다.
-자녀 분의 경우 발작 외에도 거동이 불편하다든지 추가적인 병세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열에 취약한 것이 제일 걱정이다. 보통 아이들 열을 잴 때 이마나 머리 쪽을 대보는데 우리 아이는 목덜미만 뜨거워도 열이 오르는 경우가 있어서 자주 지켜보는 편이다. 그리고 열이 확 오르는 편인 데다가 잘 식지도 않는 체질이다. 감기로 인한 발열 뿐만 아니라 더운 날씨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한여름에 더욱 걱정이 많이 된다. 아이들 특성상 조금만 뛰어놀고 흥분해도 열이 오르지 않나. 드라벳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 중 우리 아이만 그런지는 몰라도 더더욱 열에 취약한 체질이다 보니 모자를 씌우고, 목에 냉감 효과가 있는 넥쿨러도 둘러주고, 몸 곳곳에 냉감 패치를 붙여서 어린이집에 보낸다.
-경련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것 외에 일상적으로 병원 진료는 몇 번이나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경련이 없을 때는 두 달에 한 번 소아신경과를 방문한다. 또, 식이를 하면 결석이 생길 수 있고,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결석 여부, 성장호르몬과 비타민D 등의 수치 확인을 위해 신장학과와 내분비내과도 함께 진료를 보는데 두 진료과는 3~6개월에 한 번 검진 차 방문한다.
병원 진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열 때문에 기본적인 예방접종조차도 못 받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 아이도 첫 돌에 했어야 할 기본 예방접종을 20개월 차에 끝냈다. 발열로 인한 경련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고 원래 다니던 어린이병원에서도 사정을 알아서 지켜보자고밖에 말할 수 없으니 계속해서 미루다가 지금 다니는 세브란스병원에 와서야 접종을 끝냈다.
그때도 감기 때문에 열 관리 차 입원을 했는데 소아감염면역과 선생님께서 예방접종 유무를 물으셨고, 못했다고 하니 본인이 접종을 해주겠다고 해서 그제서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원래는 한 번에 여러 접종을 끝내는데 우리 아이는 하나 맞으면 열이 나니 시간을 들여서 컨디션이 좋을 때 한 번에 한 종류씩 접종을 했고, 돌 접종을 20개월 차에 끝낼 수 있었다. 선생님이 먼저 물어봐주시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냈을 것이라서 접종을 다 끝내고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난다.
-예방접종을 비롯해 어머님들이 여러 정보를 일일이 알아보셔야 하는 수고가 큰 것 같습니다
모든 아이의 양상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부모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진료 과정을 통일하기가 어려운 것도 이해는 간다. 어떤 변수가 어떻게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드라벳 증후군을 포함해 항발작약을 먹는 뇌전증 환자들은 대체로 1세대 항히스타민제에 예민하다. 뇌에 자극이 갈 수 있어 경련을 유발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 동네 병원을 갈 때 아이에게도 2~3세대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일부 병원에서는 또 소량이니 괜찮다며 1세대 약제를 줄 때가 있다. 온라인 카페에도 아이들의 약 처방전이 올라온다. 약학정보원 홈페이지에서 몇 세대인지, 무슨 약제인지 스스로 확인할 때도 있고, 엄마들끼리 서로 알려줄 때도 있다. 기관지 확장제도 안 되고, 어떤 성분이 경련을 유발한다는 정보에 다 능통해져서 드라벳 증후군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거의 반 전문가나 다름 없다고 얘기한다.
-밴드에서 활동 중이시라고 말씀 주셨습니다. 다른 보호자 분들과 어떤 얘기들을 나누시고, 또 어떤 정보들을 얻으시나요?
‘드라벳 증후군 모임’이라는 밴드고, 지금 110명 정도가 들어와있다. 매일매일 글이 올라오거나 큰 활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ADHD 등 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 보호자들의 문의 글도 올라오고, 요즘 의료 대란 때문에 응급실 관련된 이야기도 종종 올라온다.
다른 보호자들 이야기를 보다 보면 드라벳 증후군의 증상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에 대해 놀라곤 한다. 또, 드라벳 증후군 아이들 중에는 수면 장애가 많다고 한다. 멜라토닌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올라오고, 병원에서 멜라토닌을 먹으라고 안내를 해도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만 알려줄 뿐 보호자들이 직접 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서 멜라토닌을 구할 수 있는지, 평소 부가적인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많이 올라오는 편이다. 특정 약을 먹으면 어떤 수치가 오르니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종종 보게 된다.
이번에 어린이집에서 경련이 일어났던 얘기도 밴드에 공유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고 스트레스에 더 많이 노출되면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러모로 보호자분들이 본인들의 경험담을 흔쾌히 나눠주셔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이의 보호자로서 지금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나 힘든 부분이 있다면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첫째로 항상 불안하다는 점이다. 드라벳 증후군을 비롯해 소아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라면 모두 그럴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아이가 경련을 일으킬지 모르니 더욱 그렇다. 지금이야 아이가 어리니까 엄마로서 아이 옆에서 직접 케어해줄 수 있지만 나중에 크고나면 부모가 24시간 아이의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평범하게 길을 걷다가 경련 발작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활동이나 행동 범위를 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부모로서 아이가 언제 어디서 갑자기 잘못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걱정이 정말 크다.
항발작약을 먹고 있긴 하지만 경련이 사그러드는 것 뿐이지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이 오르거나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도 바로 경련으로 이어지니 많이 불안하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면 가슴이 철렁하고 굉장히 놀라게 된다. 밴드에 있는 다른 어머님들도 공통적으로 그 얘기를 하신다.
그리고 식이요법 때문에 음식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품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조리학과 출신이라 식품 영양소나 식단에 대한 이해가 있고, 또 아이의 식단 짜는 것이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으나 그럼에도 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배경 지식 없이 처음 식이요법 식단을 짜는 부모님의 경우라면 만만치 않게 힘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인 치료 환경이나 정부의 지원 정도 등에 있어 큰 어려움이나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들은 무엇일까요.
아이가 13개월 때 첫 진단을 받았는데 그때 병원에서 안내받기로는 24개월 이후에 산정특례를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두 돌이 되려면 근 1년이 더 남았을 때여서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일반 건강보험과 실비 보험으로 인정되는 부분들을 찾아 경제적 부담을 덜 수밖에 없었다. 24개월 이전에 산정특례를 인정받으려면 경련 발작이 30~40분 이상 지속되는 ‘뇌전증지속상태’가 관찰돼야 하는데 이것도 병원 내에 있는 상태에서 전문 의료진이 30~40분이라는 경련 시간을 확인해야 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수준이어야만 인정된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평소 경련이 생기면 40분 정도 지속되는데 병원에서는 그랬던 적이 없어서 결국 24개월이 되기 전까지 1년 동안은 산정특례 적용을 못 받았다. 드라벳 증후군은 24개월 이후에 경련 양상이 변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산정특례도 24개월이 기준인가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이런 기준이 마련돼 있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첫 돌 전후로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유전자 검사 결과만으로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또, 아이들이 병원만 다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이나 재활을 해야 해서 여러 센터를 다녀야 한다. 우리 아이는 언어 재활과 체육 센터, 두 곳을 다니고 있는데 한 곳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발달재활서비스의 일환인 발달 바우처를 사용해 다니고 있다. 다행히 바우처를 써서 자부담은 몇만 원밖에 안 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재활 센터를 다니는 경우나 복지관이 아니라 사설 기관을 이용하게 되면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겠단 생각을 했다. 차라리 희귀질환 아동들의 발달재활을 위한 제도나 지원이 더욱 다양하게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질병관리청에서 희귀질환자 의료비지원사업으로 H카드를 발급해주고 있긴 하지만 소득 기준을 꽤 많이 보는 편이다. 환자가구 기준은 중위소득 120% 미만, 부양의무자가구 기준 중위소득 200% 미만이 돼야 하는데 남편 소득과 지금 아르바이트 소득을 합치면 애매한 기준에 걸려버린다. 차라리 소득 기준을 더 완화하든가 아예 소득과는 관계 없이 기본적인 지원이 나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작년부터 이어진 소아과 대란이나 의료 파업도 하루 빨리 해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세브란스병원은 응급실이 폐쇄되지 않은 상태고, 소아 응급 환자는 잘 받아주고 있다. 원래도 해당 병원을 다니고 있었던 환자로 분류되니까 바로 입원 수속도 가능해서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일 텐데, 그럼에도 응급실이 언제 닫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만약 아예 신환자였다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불안했을 것 같다.
의료 파업으로 여러 병원들의 응급실이 닫히다 보니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건 꿈도 못 꾸고 있다. 아이 상태가 괜찮으면 가끔 시간을 내서 인근 교외로 놀러가는 것도 가끔 계획했었는데 원래도 가려는 지역에 소아 응급실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서 챙길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예 아침부터 밤까지 한정된 시간에만 운영해 새벽에는 운영을 안 하는 곳들도 너무 많고, 변수가 너무 많아서 파업 사태 이후에는 계속 집에서만 지내는 중이다. 이번에 충청도 쪽 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았다는 뉴스를 봤는데, 밴드에서도 그쪽 지방 사시는 분들이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었다. 의료 대란 때문에 전공의 선생님들이 안 계시니 입원을 해도 괜찮은 건지 걱정이 된다. 당장 진료나 입원에 큰 문제가 있진 않지만 교수님들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돼서 병원을 가는 것 자체가 더 수월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드라벳 증후군은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될 정도로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더 적다 보니 같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덜 알려진 상태이다. 지금보다 드라벳 증후군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 드라벳 증후군을 위한 새로운 약도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 쪽 이야기이지 아직 국내에는 신약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앞으로 더 활발히 신약 도입에 대한 이야기가 논의됐으면 한다.
드라벳 증후군 치료제 중에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구할 수 있는 스티리펜톨 성분의 약이 있다. 비용이 굉장히 비싼 편이다. 이번 외래 때 해당 약을 추가로 써야 할 수도 있다고 해서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제출한 상태다. 약제비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더 폭넓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 항발작약을 몇 가지 복용하면서도 경련 발작이 잘 조절되지 않을 때 의료용 대마오일(칸나비디올)도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경련이 잘 관리되지 않는 상태로 여러 약을 처방받고 또 중간에 약을 변경하기도 하면서 시간이 지나다보면 아이들의 발달에는 많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특정 치료제를 처방받기까지 그 전에 거쳐야 하는 치료 단계가 있는 듯한데, 약을 2~3가지 사용했는데도 효과가 없는 상태라면 의사 재량으로 그 다음 단계의 약을 바로 사용할 수 있게끔 정부에서 치료 절차를 바꿔주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아이도 처음 발프로산나트륨 계열의 약을 먹다가 바로 스티리펜톨 성분의 치료제를 처방받았는데, 그 약을 한 달 복용하고서 보험 급여 적용을 거절당해 중간에 다른 약(클로바잠)을 추가해 먹고 있는 것이다. 당시 왜 급여 적용이 안 되는지 문의했더니 약을 사용하는 단계가 있는데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스티리펜톨을 처방받았기 때문에 급여 적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특정 약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바로 시의적절한 조치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약물 치료를 포함해 식이, 운동 및 기능 재활 등 여러 방면의 관리가 필요한 질환인데 식이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발달이나 재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드라벳 증후군은 재활이 정말 중요한 병이다. 지금이야 아이가 언어와 체육 재활만 하고 있지만 크면서 다양한 부분의 재활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경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퇴행이 더 올 수도 있으니 재활을 놓을 수가 없다. 복지관에 등록하려는 대기 인원도 굉장히 많아서 사설 기관을 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여서 여러모로 재활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빨리 의료 시스템이 정상화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일 중요하고 기본적인 부분이지 않나 싶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여러 제한이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보다는 병원에 가기 편했다. 같은 맥락에서 소아과가 많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정부가 관리를 해주었으면 한다. 소아과도 소위 말하는 ‘오픈런’을 해야 한다. 예전 같았으면 별 문제 없이 평범하게 원하는 시간에 내원해서 진료를 받았을 텐데 아침 일찍 병원이 열기 전부터 가서 대기표를 뽑고 거의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니 아이러니다. 정부에서는 소아과 등 특정 진료과 인력이 부족하니 의대생을 늘린다는 접근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 인원들이 적절하게 소아과로 분배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현명한 방편을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