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한발 물러선 듯 전공의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업무개시 명령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달 6일 서울대병원의 전체 휴진 발표에 이어 9일에는 대한의사협회의 집단 결의가 있었다. 다음 주인 17일과 18일이 되면 서울대병원과 지역 의원이 휴진에 돌입한다.
의료계의 대규모 집단 행동 선언에 환자들의 탄식은 날로 깊어져가고 있다. 현재도 대학병원의 수술 일정이 지연되고 실제 치료 시기를 놓쳐 질환이 깊어지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속에 환자들은 생명'을 담보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전공의 집단 휴진 이후 7살 아이와 70대 노인이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사례가 나왔고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는 환자 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환자들의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중증·희귀 난치 질환 환자들과 가족들은 국립대병원이자 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의 집단 휴진에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환자 치료의 최후 보루로 인식됐던 곳이 가장 먼저 '집단 휴진'으로 환자들에게 철퇴를 놓은 것이다.
게다가 서울대병원의 전체 휴진이 다른 대학병원에 미칠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어 환자들은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분위기를 반영하듯 환자단체연합회는 10일 서울대병원 전체 휴진 발표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느낄 불안과 피로감은 이제 절망을 넘어 분노에 이르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이제 의대증원이 맞냐 틀리냐를 넘어선 단계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도 환자의 진료가 첫번재 의무인 의사도 이제 제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강대강 대치의 끝은 결론적으로 환자의 사망 뿐이다.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서로에게 인사처럼 하는 나라에서 사는 것을 원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수첩을 빌어 정부와 의료계에 부탁의 말씀을 올린다. 당면한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기 책임을 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라고.
의료계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전공의 안전한 복귀와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의 바로 세우기다. 전공의 복귀에 대한 정부의 행정처분 절차는 이미 결정됐다. 정부 역시 내년도 의대정원 1,509명 증원 확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이제는 갈등으로 등을 돌렸던 의정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현실에 맞고 합리적인 의료체계를 논의해야 한다. 서로가 조금만 양보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의정의 반목이 심화되면 될 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과 환자다. 정부와 의료계는 스스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한다. 그리고 똑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 할지를 지금 논의해야 한다.
작금의 사태를 이어간다면 대한민국 정부도 대한민국 의료계도 갈등으로 인해 국민의 안전을 내평겨친 존재로 역사에 남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