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아직 갈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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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아직 갈 길 멀다
  • 이광열 기자
  • 승인 2019.02.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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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 "사전의향서·연명의료계획서 활성화 필요"

지난해 2월4일 이른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수가 11만5천명을 넘겼다. 환자에게 의사를 물어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1만6천명 수준이다. 등록자 수 실적은 제도 시행 1년 성적표로 나쁘지 않다는 평가이지만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수가 태부족한 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7일 논평을 통해 "본인이 작성하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의사가 환자와 함께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활성화를 통해 환자 가족이 아닌 환자 본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성숙한 임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을 진단하고, 개선점을 제시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법은 2015년 김재원 의원이 대표 발의해 다음해인 2016년 2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제정됐다.

하지만 의료계·윤리계·법조계·종교계·시민단체·환자단체 등이 중요 쟁점에 대해 이해와 관점이 달라 치열한 논쟁의 과정을 거쳐야 했고, 일부 논점은 끝내 합의하지 못하는 등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8년 2월 4일 시행됐다. 

그러나 불과 시행 두 달도 안 된 2018년 3월 27일 개정됐다.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하거나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해 연명의료결정을 예외적으로 할 수 있는 경우의 가족의 범위를 기존 '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모두 없는 경우 형제자매'에서 '배우자, 1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 배우자·1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 2촌 이내의 직계존속·비속, 모두 없는 경우 형제자매'로 변경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 대상인 의학적 시술 범위도 기존 4가지(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에서 3가지(체외생명유지술, 수혈, 승압제 투여)가 추가됐다.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건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이 하는 게 원칙이지만 말기환자 진단 후 호스피스전문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있는 환자인 경우 담당의사 1명만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요건도 완화했다. 의료현장의 불편사항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던 환자가족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범위도 확대됐다. 이렇게 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은 올해 3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생전에 건강할 때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수는 115,259명이다. 또 의사가 환자 본인의 의사를 물어서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16,366명이다.

이 단체는 "사전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수 실적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 성적표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나 "복지부로부터 지정된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수는 290개에 불과하고, 이 중 의료기관 수는 173개 밖에 되지 않는다. 연명의료와 관련성이 가장 높은 곳이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모두 복지부로부터 사전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있다. 연명의료결정 이행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내 윤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데, 전체 3,337개 대상 의료기관 중 윤리위원회 등록기관은 5%(168개)에 불과하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다음으로 임종기 환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요양병원의 경우 1,526개 대상 의료기관 중에서 22개(1.4%)만이 윤리위원회 등록기관이다.

이 단체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의료기관을 상상할 수 없듯이 연명의료결정을 시행할 수 없는 의료기관도 상상할 수 없다. 연명의료도 의료행위의 일부라면 임종기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모두 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규정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지난 1년 동안 연명의료결정을 이행한 임종기 환자는 총 36,224명이다. 근거가 된 유형은 사전의료의향서 293명(0.8%), 연명의료계획서 11,404명(31.5%),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 11,529명(31.8%),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한 경우 12,998명(35.9%) 등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의한 연명의료결정 이행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면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초기임을 고려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근거한 경우가 적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연명의료계획서'에 근거한 경우의 비중이 낮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이어 "연명의료결정법의 핵심은 '연명의료계획서'다. 일부 환자나 환자가족은 담당의사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권유에 대해 강력히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담당의사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임종기 환자의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유할 수 없다. 만일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위해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다면 정부는 그에 합당한 보상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담당의사가 환자와 죽음을 상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료행위와 차이가 있고 많은 시간과 노력 투입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 단체는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가 없어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시행되는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와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한 경우가 총 67.7%로 전체 연명의료결정 이행 규모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특히 남용 우려가 높은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한 경우가 많은 건 걱정스러운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명 경시 풍조 조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연명의료결정제도 남용 방지책은 필요하다. 일정기간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한 후 성숙한 임종문화가 정착돼 남용 우려가 없어졌을 때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 단체는 "우리는 앞으로 치료환경과 함께 임종환경도 환자 중심으로 정착되도록 관련 정책·제도·법률을 개선하고, 대국민 인식개선과 홍보활동도 적극 전개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 사회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문화가 조속히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 단체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대한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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