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았던 '정서적 학대' 청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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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았던 '정서적 학대' 청취담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03.24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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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법 다섯살 다워진 유진이는 드디어 자기 나이를 5살이라고 말한답니다. 
이제는 제법 다섯살 다워진 유진이는 드디어 자기 나이를 5살이라고 말한답니다. 

유진이가 이전에 다녔던 어린이집 중 한 곳의 이야기를 오늘 해볼까 합니다. 유진이는 엄마와 아빠의 의지와 달리 매해 어린이집을 옮겨다니는 환경 속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최초의 어린이집은 가고 싶었던 곳이 마감을 일찍하는 터라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어서 다녀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이후 두돌께 다닌 어린이집은 최근에 생긴 시립 어린이집이었고 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여 안심하며 아이를 원에 보냈었죠. 

안타깝게 유진이는 이사로 두번째 어린이집을 떠나 세번째 어린이집을 다니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엄마는 조금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새로 터를 잡은 곳은 안양이었는데 집 인근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을 들어보니 대부분 교육을 강조하며 '명품어린이집'이라는 타이틀에 열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막 네살이 되는, 36개월에 들어서는 아이에게 원치않는 교육을 시키기도, 이미 충분히 만연한 명품문화에 끼고 싶지도 않았던 저는 그나마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드러냈던 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새 어린이집은 마당이 딸린 아담한 곳이었고 선생님들도 친절해 보여 보내게 됐습니다. 초반에 유진이도 제법 잘 적응하며 어린이집 등원을 즐거워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는 하반기에 들어서며 시작됐습니다. 

유진이 등원은 출근을 하면서 엄마가, 하원은 일을 빨리 끝낸 아빠가 맡아 했는데 이상하게 엄마의 눈에만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실수가 자주 들어오곤 했습니다. 일테면 아이들의 신발을 벗기다 넘어뜨리는 일부터 급하다며 등원하는 아이들 등을 미는 모습, 인상을 쓰며 아이들을 바라보는 모습 등을요. 

선생님도 사람이라서, 그리고 무신경할 수 있어서 그럴수도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은 아이가 등원 거부를 하면서 엄마의 머리 속을 어지럽게 했습니다. 유진이는 여름 휴가를 다녀온 이후부터 "어린이집 가기 싫어"라는 말을 연발하며 등원 거부하는 날이 점차 늘어났고 이런 아이의 반응 때문에 엄마는 자주 속을 끓여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진이가 원 안에서는, 더 정확히는 반 안에서의 생활은 잘 하고 있었고, 담임 선생님에게 "사랑해요, 선생님"하며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 그나마 위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 "4살 아이의 등원거부는 일상"이라는 말을 보너스처럼 듣고 나서는 사실 조금은 맘을 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가을에 들어서며 유진이의 등원거부가 점차 가라앉고 있을 무렵 마중을 나온 한 선생님이 "빨리 신발 벗어. 얼른"하며 명령조로 아이에게 말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얼굴을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자 잘못한 것을 인지한 듯 그 선생님은 바로 등을 돌려 자신의 반으로 갔고, 얼마 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그 사이 유진이는 엄마에게 작은 목소리로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라며 작은 눈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놀란 얼굴로 "유진이 왜 울어요. 어머니?"하고 묻기에 아주 담백하게 방금 있었던 일을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놀란 얼굴로 바로 사과를 대신했고, 유진이를 달래며 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회사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지만 마음이 먹먹해서 오전에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후에 원장 선생님이 자초지종을 듣고 사과를 하셨지만 저는 더 이상 아이를 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다는 맘을 먹게 됐죠. 

주변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며 평판조사를 나름 열심히 해서 한 곳에 신청을 냈고, 다행히 아이 입학이 확정돼 가벼운 나날을 보내던 저는 결국 지난 2월 원치 않는 사건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유진이와 등원을 하는 아침, 어린이집 현관 쪽에 위치한 반에서 아이의 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가 저렇게 우는데 선생님은 왜 안달래시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울음 그치지 못해. 조용히 해"하는 여성의 고함이 벽을 넘어 제 귀에 꽂혔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저는 유진이를 얼른 쳐다보았는데 다행히 유진이는 입구로 나오는 담임 선생님 모습을 보고는 반가움에 정신이 팔린 듯 했습니다. 

금방 있었던 일을 담임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아이를 들여보내고 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출근 길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고민을 한참 하다 육아동지에게 이런 상황을 전했고 대화 끝에 어린이집 원장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직업이 기자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서 어린이집 메뉴얼을 찾아 이것이 아동학대 범주에 포함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제대로 돌봄을 행하지 않는 것은 정서적 학대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원장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오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처음엔 그럴 일 없다며 부정하던 원장선생님도 그 반의 상황이 담긴 cctv를 확인하고 나서야 저에게 사과를 하셨습니다. 저는 당사자가 아니어서 사과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 부모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 달라는 말을 전했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다만 폭풍 지나간 다음 날 유진이를 등원시키기 위해 도착한 어린이집에서는 신나는 동요소리가 크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한번도 들은 적 없었던 동요를 그렇게나 큰 소리로 듣게 되니 어색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부의 소리를 외부로 전달하지 않겠다는 원장 선생님의 의지의 표현인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유진이는 이제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적응을 잘하는 아이라 어린이집 생활에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다만 아쉬운 것은 이전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을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유진이는 등원을 하면서 이전 어린이집이 있는 골목 쪽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하네요. "엄마, 새 어린이집 선생님도 이뻐요. 좋아요."

순수하고 명랑한 유진이가 이번 어린이집에서는 온전하게 돌봄을 받고 친구들과 어우러진 생활을 이어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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