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가올 새 정부에게 바라는 자살예방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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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가올 새 정부에게 바라는 자살예방 대책
  • 뉴스더보이스
  • 승인 2022.01.1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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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2020년에만 1만3,19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36.1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인구 10만 명 중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의 수를 나타내는 자살 사망률은 25.7명으로 2019년 26.9명보다 소폭 줄었다. 하지만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9명의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자살 사망률 1위 국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OECD 국가 중 자살 사망률이 20명을 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21.6명의 리투아니아뿐이다.

다른 사망 원인들과 비교하면 자살의 심각성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살은 2020년 우리 국민이 사망한 원인 중 암 160.1명, 심장질환 63.0명, 폐렴 43.3명, 뇌혈관질환 42.6명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어림잡아 암으로 6명이 사망하는 동안 자살로 1명이 사망한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수지만, 이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수이지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수가 아니다. 사망자의 약 3배인 연간 4만 명이 자살 시도 후 응급실로 내원하는 점을 감안하면, 한 해 동안 실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수는 4만 명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원인은 우울증, 대인관계, 말다툼, 경제적 문제, 신체적 질환, 만성통증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죽고 싶어서 자살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술이나 약물에 취해 냉정을 잃거나 정신적 고통 속에서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자살 시도와 그에 따른 죽음이 목적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멈추는 수단으로써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살시도 환자들의 대부분은 술이나 약물에서 깨어나거나 감정이 다소 진정되면, 자살 시도를 후회한다. 보호자들에게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거나, 응급실 의료진에게 다시 한 번 살 수 있게 치료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얼마 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사람이라고는 절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된 후 퇴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퇴원했던 환자들 중 상당수는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응급실로 실려온다. 퇴원 후 상담이나 치료 등 적절한 정신건강 관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중 1년 이내에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은 16%나 되고, 여생 중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은 약 70%에 이른다. 자살시도 경험자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보다 25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향후 5년간 추진할 100대 과제를 발표하면서 역대 정부 최초로 자살 예방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자살예방 국가 행동 계획’을 확정하고, 2016년 기준 10만 명 당 25.6명이던 자살률을 2022년까지 17명까지 감소시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발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전까지 40여 곳에 불과하던 자살시도 사후관리수행 응급의료기관을 전국 모든 응급실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와 함께 자살시도 사후관리 관련 건강보험 수가 보상 체계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임에도 자살 사망률은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이러한 실패는 자살시도 사후관리수행 응급의료기관의 더딘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자살시도 사후관리수행 응급의료기관은 2019년 63곳, 2020년 69곳, 2021년 76곳으로 지난 5년 동안 30여 기관만 추가되는 데 그쳤다. 전국 응급의료기관이 약 400곳이니 전체 응급의료기관 중 자살시도 사후관리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은 여전히 20%에도 못 미친다. 함께 약속했던 관련 건강보험 수가 보상체계 역시 민간 의료기관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다가올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한 번 자살예방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선 자살시도 사후관리수행 응급의료기관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자발적 참여에만 의존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립대학교 병원을 포함한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국공립병원의 응급의료기관에서 자살시도 사후관리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사업 수행이 어려운 민간 응급의료기관의 경우는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와 같이 정부가 별도의 기관을 설립해 지원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마저도 어려운 응급의료기관에는 지자체가 직접 사례관리자를 파견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자살시도 환자 대상 경제적 지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일부 지원이 되더라도 자살시도로 인해 발생한 내외과적 치료에 국한해 지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살시도 후 주기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거나 예방적 차원에서 입원을 하더라도 환자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거의 없다.

그 결과 많은 수의 자살시도 환자들이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를 포기하고 만다. 본인부담금 면제, 비급여 의료비 지원 등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해 자살시도 환자에 대한 진료의 연속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 외에 자살시도 환자 대상 복지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자살시도자의 대부분은 퇴원 후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살시도자가 겪는 생계 곤란이나 주거 곤란은 자살시도 환자가 다시 극단적인 선택을 택하는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생계비, 임시 주거지, 일자리 등 다양한 복지 지원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자살시도 환자가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자살시도 환자의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다. 즉,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이다. 새 정부는 이들을 구제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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