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행정지 환수환급법, '혹 떼려다 혹 붙이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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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행정지 환수환급법, '혹 떼려다 혹 붙이지 않게'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1.11.2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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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등재의약품 재평가 사업이 이른바 '칼과 방패'의 싸움으로 비화된지 오래다. 제약계가 과거와 달리 소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이나 손실 방어에 나서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그 뒤에는 강력한 후원자인 로펌이 자리한다. 

약제소송은 잘 알려진 것처럼 김앤장이 판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장, 율촌, 세종 등 유수 법무법인들이 합을 겨루고 있다. 최근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이른바 헬스케어팀을 신설하기 위해 제약, 심사평가원 등의 전문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말도 돈다. 

대형로펌의 이런 움직임은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예고돼 있는 기등재의약품에 대한 각종 재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특허만료 성분을 대상으로 한 해외약가비교 재평가는 약제소송의 최대 관심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황당한 지점은 이 소송이 이기는 싸움보다는 질 가능성이 있어도 처분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포함한다는 데 있다. 바로 정부와 국회가 대책마련에 몰두해 온, 또 외견상 무분별해 보이기도 하는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이다.

복지부가 지난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한 '소송 및 집행정지 현황'을 보자. 최근 10년간 제약사들이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제소송은 59건인데, 이중 상당수(40건)는 2018년 이후 제기됐다. 또 이런 소송에는 대부분 집행정지 신청이 수반된다. 

가령 2018년 이후 소송 40건 중 2건은 취하되고, 38건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36건에서 집행정지가 인용됐다. 나머지 2건은 미신청과 기각이 각각 1건 씩이었다.

법원이 약제소송에서 집행정지에 '호의적'인 건 근본적으로는 현행 약가제도의 미비점에서 기인한다. 복지부도 건정심 자료에서 "법원은 약가인하 등 집행 시 제약사 측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는 사유로 집행정지를 인용하고 있다. 약가조정 등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되더라도 제약사가 입은 손실에 대한 구제수단이 부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이 점을 일부 인정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는 상당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복지부가 추정한 2018년 이후 집행정지에 따른 약가인하 지연(36건)으로 발생한 재정손실은 약 4천억원에 달한다. 

지난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약제소송 집행정지 환수환급법안과 복지부가 내년 상반기 시행목표로 도입하겠다고 건정심에 보고한 환급제도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환급'이라는 구제장치를 마련해서 집행정지 인용요건의 토대를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의도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법률안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12월 중 입법절차를 마치고, 내년 6월 중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가 보고한 환급제도가 이 보다 빨리 시행될지, 시기를 맞출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집행정지 결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도입취지에 비춰보면 법 시행보다 복지부 환급제도 도입이 선행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제도 도입 효과는 최근 10년간 제기된 21건의 소송 중 복지부가 패소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오리지널 약가인하 소송과 관련한 집행정지에 가장 빠르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법원이 집행정지를 인용하지 않을 경우 실익(약가인하 지연)이 없어지기 때문에 2018년 이후 급증한 관련 소송은 대폭 감소하거나 없어질 수 있다. 정부와 보험자 입장에서는 제도도입 초기부터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환수환급제도 자체가 '완전한 해법'이 되는 건 아니다. 기등재의약품 재평가 확대는 또다른 소송을 예비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정부가 시쳇말로 '허점'을 만들지 않고 보완하더라도 당장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제약사들의 저항(소송)은 피해가기 어려운 수순일 것이다. 

결국 더 요구되는 건 일련의 재평가에서 제약계의 수용성을 높이는 정부와 보험당국의 노력과 배려다. 특히 환수환급제도는 징수금과 환급금을 산정하는 방식에서 반발을 살 수 있고, 자칫 또다른 소송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환수환급제도 연착륙과 기등재의약품 재평가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 '칼과 방패'의 싸움을 그나마 줄이기 위해서는 느슨한 형태의 간담회나 설명회보다는 정부와 제약계로 구성된 좀 더 타이트한 TF를 구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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