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T 수준 높은 RWD 수집·표준화 등 과제 산적
최경호 사무관, 유연한 급여 평가 고려 암시
심사평가원 '2021 혁신연구 심포지엄'(3)
면역항암제를 필두로 CAR-T치료제 등 초고가약제가 등장하면서 실제임상근거(RWE)에 기반한 의약품 등재 후 사후평가제도 도입 필요성이 최근 몇년사이 보험의약품 정책분야 화두가 되고 있다. 그 출발은 '재정독소' 우려에서 나왔는데, 제약바이오업계는 RWE 활용이 또하나의 가격통제 기전으로 활용될까 우려한다.
하지만 정부와 보험당국은 이미 RWE를 활용한 의약품 급여관리 제도를 도입하기로 마음 먹은 듯하다. 그동안 워밍업으로 수 차례 연구를 수행해왔고, 심사평가원이 4일 '의약품 등의 급여관리를 위한 실제임상자료(RWD) 수집체계 구축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2021 혁신연구 심포지엄'은 이를 공개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데 있다. 전문가와 환자단체, 산업계 등은 RWE 활용에는 공감하면서도 RCT(무작위 임상시험) 수준의 높은 RWD(실제임상자료) 자료 수집과 표준화 등 선결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 등 주요국들의 사례처럼 불확실성이 큰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의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이런 가운데 정부 측이 RWE 활용 기반이 마련되면 유연한 제도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선등재후평가제도' 도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주목된다. 물론 정부와 보험당국은 허가-평가연계제도, 경제성평가면제제도 등을 신속등재제도로 이해하고 있어서 환자단체나 제약계가 생각하는 신속등재 또는 '선등재-후평가'와는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홍지형 가천대학교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이날 '영국의 RWD 통합관리와 활용’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한국도 영국처럼 보건의료 데이터 통합시스템을 구축해 (데이터 관리에)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불확실성이 높은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RWD 등을 활용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등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급여관리에 나서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고 했다.
변지혜 심사평가원 부연구위원은 ‘RWE를 활용한 의약품 등 국내 급여관리’를 주제로 발표했다. 변 부연구위원은 주제발표에서 심사(환자임상) 정보, 실시간 환자단위 비급여 처방약 정보, 환자중심 에피소드 등 RWD를 인프라 활용하고, 환자단위 RWD 데이터 구축하는 등 심사평가원의 기능과 역할에 필요한 RWE 생성방안을 소개하고, 향후 RWE를 활용한 급여관리 방안을 제시했다.
장대영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장(한림대성심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은 '병원진료기록(EMR)을 활용한 위암 약제의 효과 및 안전성에 대한 국내 RWE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심사평가원 의뢰를 받아 연구회가 수행한 연구였다.
장 교수는 "후평적 연구로 결측 또는 확인 불가 데이터가 존재했고, 의료경제 효과나 삶의 질 평가를 수행하지 못했다. 일부 환자들은 추적 관찰이 안돼 정확한 생존여부를 알 수 없었다"며, 연구의 한계를 언급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병원 진료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함으로써 RWE를 제시하고 다른 약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병원 진료기록 수집에 대한 표준화된 체계 및 모범사례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와 환자단체, 제약업계 등 각계 의견은 공감과 우려가 공존했다.
방영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RWD는 연구시간과 비용을 줄 일 수 있고, 진료현장의 실제상황을 잘 반영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연구수행 과정에서 '바이어스(비뚤림)', 자료미싱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신뢰할 만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방 교수는 특히 "적정 샘플사이즈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중요하다. 킴리아 같은 약제는 투약환자가 1천명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또 이런 치료제는 약 자체의 효과 뿐 아니라 지지적 치료도 중요한데, 어떤 병원에서 투여하는 게 좋은지 등도 봐야 한다. 의무기록이 잘 정리되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의료질 향상과 데이터 표준화 등을 고려해 길게 보고 가야 한다"고 했다.
한은아 연세대 약대 교수는 RWD 품질, RWD 사용목적에 부합하는 규제지침 마련, 데이터 접근성 등에 대해 언급했다.
한 교수는 특히 "RWD 또는 RWE 도출 결과로 의사결정을 할 때 논란이 없으려면 RCT 품질 만큼 따라가야 한다"며,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종헌 건보공단 빅데이터운영실장은 과거 건보공단이 수행한 RWE 관련 연구 수행과정의 어려움을 소개했다.
박 실장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병원마다 자료를 주겠다는 의사와 방식이 너무 달랐다. 건보공단이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 다만 RWE나 RWD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큰 방향성에 대해서도 신경써야 하지만 미시적인 연계방법과 기준 설정 등도 꼼꼼히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숙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연구관은 "RWD, RWE 활용 사례는 점점 증가할것으로 보인다. 안전성 입증자료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신뢰성 확보가 중요하다. 데이터 자체가 가진 품질 연구설계, 자료 분석방법 등이 신뢰성 확보를 위해 객관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식약처는 이를 위해 규제과학 연구를 지속 추진하고 다양화된 평가기준을 연구사업을 통해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김준수 KRPIA 정책위원장(애브비 전무)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 위원장은 "사후관리를 RWE로 할거냐는 매우 조심스럽다. 중간 변수 사전차단 조건으로 설계돼 약물의 치료효과를 제대로 보는게 RCT다. RWD는 일상 데이터이므로 양은 많지만 다양한 환경조건과 영향적 변수가 있어서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없다. 분류상으로도 근거수준이 낮다"고 했다.
이어 "영국 NICE도 RCT를 선호한다고 했고, RWD는 제한적으로 활용한다. 다른 나라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활용도에 대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활용도는 아직 제한적이다. 다만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의 비용효과성이 불확실할 때 추가 자료 수집을 위해서는 RWD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등재 후평가' 약제가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은영 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등재약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RWE를 활용하는데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RWE로 사후 재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면 생명과 직결된 신약 등에 대해서는 신속히 등재시키고 사후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RCT와 실제임상근거와 차이가 있다는 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고가약제에 대해서는 실제 효과가 RCT대로 나오는 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사무관은 이어 "선등재 후평가 말도 있는데 RWE를 활용한 평가방식이 충분하다면 앞단에서 급여 평가가 끝나야만 급여가 등재되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제도가) 훨씬 유연한 모양새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