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과 46살의 공통점과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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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과 46살의 공통점과 차이점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1.09.08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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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이제 30개월이 됐습니다. 한국 나이로 3살이지요. 제법 말도 잘해서 자신의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보고 싶은 날이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아은이를 좀 봐야겠는데"하며 친구 집에 가자고 조릅니다.

"오늘은 어린이집 가야해서 안돼"라는 답변을 들려주면 그래도 지지 않고 "아은이네 갈까?"하며 한번 더 엄마의 반응을 살핍니다. 혹여라도 엄마가 "그러자"고 대답하길 기다리는 것이지요.

주말과 평일의 차이를 아직 인지하지 못해서인지 가끔 본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날(토요일과 일요일)도 있기 때문에 친구를 보러가자는 요청은 거의 매일 아침 인사처럼 자연스러운 일과가 됐습니다.

아침 식사는 주로 엄마가 만든 쿠키나 빵을 먹는데 같은 메뉴가 이틀 연달아 나오는 날이면 "다른 거 없어?"라며 메뉴 변경을 요구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에그 스크램블을 후다닥 만들거나 콘플레이크 등으로 변경해 바치면 그제야 "맛이 좀 괜찮은 걸"하면서 만족해 합니다.

등원 전에는 엄마가 골라놓은 '오늘 입을 옷'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원피스를 꺼내 놓으면 확실하게 "이거 싫어"라며 안 입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뒤 옷장으로 가서 본인이 좋아하는 레깅스와 티셔츠를 골라 옵니다.

"엄마가 이거 예뻐서 유진이 주려고 샀단 말이야"라고 사정을 해봐도 웬만해서 져주는 일이 없습니다. 아주 가끔 기분이 좋은 날 눈치를 살피며 갖은 알랑방구를 떨어야만 "그럼 입어볼까"라며 져주는 척 원피스를 입어 봅니다만, 결국엔 다 입은 원피스를 벗겨내라며 짜증을 부리기 일쑤이기 때문에 옷장 속 이쁜 원피스들은 쓸쓸히 쳐박혀 있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취향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아이를 보며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어"라고 신경질을 부리는 내 뒤통수에 대고 남편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큰 거랑 작은 거랑 똑같아"라는 말을 남기고는 잽싸게 사라집니다.

딸 아이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오전 시간은 금세 흘러갑니다. 등원을 시키고 헐레벌떡 집에 돌아와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고 진행할라치면 거짓말처럼 아이의 하원 시간이 다가옵니다.

아이는 하원 후 주로 산책을 하거나 아빠와 놀이를 하는데 노는 모습을 보면 '따로 또 같이' 형태를 띱니다. 이를테면 아빠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한 뒤 아빠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조용히 다른 책을 골라서 보거나, 블럭을 가지고 놀자고 요청해 놓고 옆에서 퍼즐을 맞추는 식입니다.

뽀로로를 보고 싶다고 해서 TV를 틀어놓으면 소파에 앉아서 인형을 쓰다듬거나, 역할 놀이를 하면서도 동요를 듣고 싶어 하는 이른바 '멀티형 놀이'를 즐깁니다.

한 번에 두 가지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유진이와 달리 엄마는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입니다.

책이면 책, TV면 TV, 놀이면 놀이지 중간에 다른 것이 끼어들면 하던 것도 멈추게 되는 단순형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유진이의 놀이 형태에 나도 모르게 욱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한참을 집중해서 놀이에 빠져있는 순간 유진이가 딴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건 순전히 엄마의 입장이지만 뭐랄까요, 30개월 밖에 안되는 아이에게 농간을 당하는 느낌입니다.

속으로는 "에잇, 이따위 놀이"하다가도 유진이가 "엄마, 화났어?"라고 물어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이는 또 30개월에 들어서며 점점 에너자이저같은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엄마가 나가 떨어지기 일수입니다. 과거 심권호 선수가 아이와 놀이를 하다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 하는 서울우유 광고 장면과 카피문구가 어떤 의미인지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레슬링 금메달을 딴 심권호 선수가 5~6살 되는 아이와 놀아주다가 백기를 드는 광고의 카피는 "심권호도 못 당하는 우리 아이 체력"인데, 이걸 이리도 일찍 체감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주말 동안 온전히 이틀을 아이와 보내다 보면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의 체력과 엄마의 체력이 반비례하는 이 상황이 가끔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딸 아이가 자는 낮잠 시간에 저도 같이 눈을 붙여야 오후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요즘 저희 집 주말 오후는 가족 모두가 잠을 자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여기가 스페인인가 싶을 정도지요.

유진이는 요즘 평일 저녁에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저녁 9시를 넘어서도 "조금 더 놀래"를 외치며 잠자리에 들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야 마치지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저로서는 정말 인간적으로 툭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와 딸아이는 실랑이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의 글은 딸아이가 크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저와 닮은 모습과 다른 모습, 그리고 엄마가 나이들어 슬픈 장면이 나와서 제목을 '3살과 46살의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아직 엄마는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아이와 잘 놀아주는 편인데,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런 저와 아이는 친구처럼 지내는데 그런 의미에서 제 나이도 '세'보다는 '살'을 붙여 표현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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