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종이·팩스, 일본마저 넘어선 아날로그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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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종이·팩스, 일본마저 넘어선 아날로그 집착
  • 주경준 기자
  • 승인 2021.08.12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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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전자 첨부문서 제도화

나이가 차고나니 눈이 침침해졌다. 돋보기 가지고 다니기엔 불편해 상품에 적힌 작은 글씨를 읽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 읽곤 한다.

줄 간격은 0.5 포인트, 첨부문서에 일반의약품은 7포인트, 전문의약품은 6포인트이상이라고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은 정해 놓았다.

디지틀 시대에 상대적 약자인 50~60대 이상의 장년과 노년층을 위한 따뜻한 아날로그 방식의 배려일까. 혹은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할 의약품이기에 종이로 된 첨부문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합리적 입장에 따른 것일까.

현금, 종이, 팩스 등 오리지널 배려의 끝판왕이자 그 집착으로 인해 갈락파고스화 됐다고 지적받는 일본은 8월부터 종이 첨부문서를 전자화된 첨부문서로 전환을 시작했다. 

구글플레이의 전자 첨부문서 첨문나비앱
구글플레이의 전자 첨부문서 첨문나비앱

GS1 규격의 바코드 기반으로 添文(첨문)네비게이션 앱에 구현된다. 쉽게 바코드 찍으면 의약품 정보가 보여지는 단순한 앱활용 방식 전자문서다. 시작단계인 11일 현재 한 만명 정도 다운받았다. 

지난 1일부터 오는 2023년 7월말까지 2년간 전자 첨부문서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품질, 효능 및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른 조치다.

동네약국에 잠시 들러 통상 인서트 페이퍼로 불리우는 종이 첨부문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히 작은 병 단위 전문의약품의 경우, 종종 뚜껑 등에 붙어있던 첨부문서가 없어지거나 일부가 찢어진 상태로 배달이 오기도 한다고 개국약사들은 이야기한다.

글자 포인트가 있다보니 적응증과 이상반응 등 내용이 많은 경우, 여러 번 접혀있어 펼치기도 불편하고 물기 때문에 글자가 일부 뭉개진 경우도 있다. 또 박스 포장이 아닐 경우엔 제품에 부착된 상태다 보니 보관도 불편하고 실수로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넷 환경을 자랑하지만 바코드나 QR코드를 통해 의약품 정보를 스마트폰 앱으로 열어보는 디지틀 전환은 종이 환경에 익숙한 노년층에 불편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스마트폰 미이용자에게 의약품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는다.

다만 자원 낭비를 줄이고 제조업체의 생산공정에서 편의성이 높아지는 소소한 장점들이 있다. 

또 약 복용중 부작용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보관해놓은 첨부문서를 찾아 읽는 것보다 간단하게 스마트 폰으로 저장된 정보를 불러오는 등 앱 개발 수준에 따라오는 부가적인 여러 장점도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3개 언어가 통용되는 곳에서 생활하면서 의약품을 구매할 때 가끔 작은 소책자가 딸려오기 한다. 의약품 첨부 문서가 최소 3개 언어(종종 힌디어 포함 4개 언어)로 제공돼야 하다보니 아무리 깨알같은 글씨로도 종이 한 장에 해결을 못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제약사는 하나의 언어로만 첨부문서를 동봉할 수 있도록 대부분 예외 적용을 받고 운 나쁜 나머지는 약과 책을 만든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의약품 복용설명서를 전자문서로 전환시, 국내 외국인과 의약품 구매 관광객들에게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의약품 정보를 제공하는 미래도 대비할 수 있다는 잠재적 장점도 있다.

동네약국에 배달된 작은 병단위 의약품의 첨부문서 
동네약국에 배달된 작은 병단위 의약품의 첨부문서 

 

앞서 이야기한 일본에서 개발한 앱을 잠시 둘러봤지만 종이 문서 포맷을 스캔한 정도로 개발 수준은 낮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개선하지 않고 멈춰있는 한국의 상황보다는 나아 보인다.     

이외에도 아날로그에 대한 집착은 의약분야에서 흔하고 흔하다. 

여전히 대부분의 아픈 환자는 종이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조제가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약사는 약사대로 바쁘고 환자는 코로나19상황에서 옆사람이 불편하고 대기시간은 길게만 느껴진다.

디지틀 강국답게 병의원 예약을 똑닥 등 앱으로 진행하고 결제까지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는데 유독 처방전은 프린터로 뽑아낸 종이여야만 한다.  

복약지도서도 약봉투 등에 출력되는 등 약사를 위한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정작 환자를 위해 간단한 QR코드도 없다. 복용약물과 날자 정도의 정보만 저장, 약봉투를 버린 후에도 생소한 DUR 등 접근없이도 복용했던 약물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간단한 앱 구현 만으로도 환자의 편의성과 그 활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종이에 대한 애착과 함께 대체조제 관련 법령부터 시작된 의약분야의 팩스 사랑 또한 일본 부럽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전화처방시 처방전은 팩스와 이메일 등을 통해 보낼 수 있다.  반드시 진료한 환자의 전화번호를 포함해서 보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최고 권위의 상급종합병원도 용산 세운상가 굴다리의 추억를 되살리며 "싫으면 두 번 찍던지" 라는 타이틀의 1만원짜리 PACS CD를 굽고 있다. 데이터 용량이 크다지만 USB도 아닌 CD에 담을 수준인데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5G상용화 세계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실화된 과거다.

이같은 상황에서 복지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꺼내들었던 원격진료나 업체와 갈등 양상만 부각되는 의약품 배달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에 대한 기대는 언감생심이다. 

효과 아무리 좋아도 부작용이 없다면 역설적으로 약이 될 수 없다. 부작용이 없다면 관리의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의약관련 디지틀화에도 부작용이 없지 않을 것이다. 우려 때문에 디지틀화라는 약을 쓰지 못한 결과, 가위바위보도 지기 싫다는 일본보다도 뒤처지는 모양새다. 우려했던 부작용은 있을 것이고 이는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된다. 의약분업도 순식간에 적응했다 뭐든 시작이란 걸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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