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원샷치료제' 급여...재부상한 선등재·후평가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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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원샷치료제' 급여...재부상한 선등재·후평가 요구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1.07.12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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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임상전문가·전문기자까지 한 목소리
복지부 "제도도입 따른 부작용 함께 고려돼야"
"제네릭 약값 낮춰 고가신약 보장성에" 지적도

김민석·최혜영 의원, 첨단바이오약 접근성 주제 정책토론

대체약제나 대체치료법이 없으면서 생명과 직결되는 약제에 한정해 예외적으로 건강보험을 먼저 적용해주고 사후에 재평가를 통해 약가나 급여여부를 평가하자는 이른바 '선등재후평가'는 환자단체연합회가 몇년전부터 신약 접근성 확대 방안으로 제안해온 제도다.

이 단체는 내부토론 등을 거쳐 생명에 직결된 항암신약 등은 A7 등재가격 등을 참조해 허가와 동시에 '임시가격'으로 먼저 등재시킨 뒤, 이후 심사평가원 평가와 건보공단 협상을 통해 상한금액을 결정하는 신속등재 방안으로 발전시켰고, 전문가들도 가세해 '선등재후평가'를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개선할 예외적 장치로 제안해 왔다.

하지만 정부와 보험당국은 줄곧 신중론을 유지해왔다. 이미 환자에게 급여로 투여되고 있는 약제를 사후적으로 재단할 때 보험당국의 협상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는 등 제도 운영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나 한계점이 많다는 이유였다. 

'선등재후평가'는 이후에도 약가제도 관련 정책 토론회 뿐 아니라 국정감사에서도 거듭 제안됐지만 제도화 논의가 활성화되지 않고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런 가운데 노바티스의 CAR-T치료제 킴리아와 졸겐스마와 같은 이른바 '원샷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선등재후평가'가 또다시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킴리아와 같은 약제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데 급여논의는 더디게 진행되면서 더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서울 영등포구을)과 최혜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지난 9일 온라인을 통해 개최한 '첨단바이오의약품 환자접근성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도 '선등재후평가'는 중요한 정책대안으로 제시됐다.

김원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환자들이 (킴리아) 급여를 기다리며 버틸 수 있는 시간은 3~6개월 남짓이다. 대체치료 방안이 부재한 환자에게 장기 생존 가능성을 열어주는 혁신적 첨단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신속한 급여방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신속 급여방안은 '선등재후평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의경 성균관대약대 교수(전 식약처장)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패널토론에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형기 교수 서울대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 교수는 환자 신약 접근성 강화 방안으로 ICER 현실화 및 신축적용, 위험분담제 확대, 별도기금 도입 등과 함께 선등재후평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위험분담제 도입이후 신약 접근성이 일부 개선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신약 허가 후 급여까지 729일이 걸린다. 이건 말그대로 환자들에게는 '희망고문'이다. 보험제도를 깐깐하게 운영하는 독일, 이웃한 일본 등이 운영하고 있는 선등재후평가제도를 우리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원영 혈액암협회 부장은 "생명보다 더 우선돼야 하는 가치는 없다. 현대사회가 경제 논리에 따라 많은 정책들이 결정되고, 일부에서는 고가 항암 신약의 급여 적용에 '사회적 합의'를 말하지만 사람의 목숨만큼은 경제 논리에서,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서 예외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 부장은 이어 "(당장 킴리아를) 급여로 사용하기 어렵다면 선별적으로, 단계적으로 또는 너무나 상태가 좋지 않아 지금 당장 이 약을 써야 하는 일부, 소수의 환우분들만이라도 제발 금전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시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충헌 KBS 의학전문기자는 "위험분담제 도입으로 약가 협상에 숨통이 틔었다. 여기서 나아가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혁신 신약의 경우 신속한 보험 등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환자의 빠른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해외에서 시행하는 선등재 후평가 제도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기자는 또 "고가의 혁신 신약이 속속 개발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가벼운 질환에 대한 보장을 줄이고 국가의 지원을 확대하는 등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도 시급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양윤석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선등재후평가 등과 같은 제도들은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선등재후평가제도가 우리 제도 환경에서 작동될 수 있을까, 가령 환자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약제를 퇴출시키거나 약가를 인하할 수 있을까 등 (예측되는) 부작용도 함께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원샷치료제' 급여방안은 재정분담, 지불방식 등에 대해 현재 고민 중이다. 조속한 시간 내 검토를 마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양 과장은 그러면서 "고가 중증질환치료제 급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효율화하거나 보험료를 인상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현재 정부는 지출효율화 쪽에 무게를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기등재약 재평가가 대표적인데, 소송 등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지출효율화를 통해 (고가신약) 재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발제자와 패널토론자들은 현 약가제도 운영과 관련한 쓴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너무 비싸다고 지적되고 있는 제네릭 약값도 소환했다.

이형기 교수는 "선별등재제도 도입 이후 신약 급여현황을 보면 혁신신약보다 기존 약제를 조금 개선시킨 비혁신신약이 더 많이 급여화됐다. 임상적 효용보다 더 중요한 게 가격이다. 심사평가원 직원들이 쓴 논문을 보면 정부가 효과보다 가격이 싸야 더 급여를 잘 해준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건 (심사평가원 직원들이) 스스로 논문을 통해 자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사평가원과 건보공단으로 이원화돼 있는 가격결정 구조도 문제삼았다. 그는 "심사평가원 단계에서 가격을 논의하고 건보공단에 가서 또 협상하는 제도가 과연 필요한가. 희망고문만 길어질 뿐"이라고 했다.

제네릭 약값도 문제삼았다. 그는 "제네릭은 의약품 개발관점에서 보면 무임승차한 약제다. 그런데 한국은 여기에 너무 돈을 많이 쓴다. 제네릭 약가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는 이충헌 기자도 "중국은 1년에 두번정도 제네릭 약가를 신청받아서 약값을 속칭 '후려친다'. 제네릭 약값을 줄여 중증질환치료제 보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원석 교수는 "신약을 30년된 표준치료제나 표준치료법과 비교하라고 하면 가격이 수백배나 차이가 날 수 있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방식이다. 환자 수가 드문 약제의 경우 3상 임상자료를 만들기도 어렵다. 이런 경우 탄력적으로 급여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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