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사·약사·재정에도 도움되는 약품비 지불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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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사·약사·재정에도 도움되는 약품비 지불제도는?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1.03.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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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비아 박사, 한국형 참조가격 '기준가격제도' 도입 제안
"만성·급성기질환 일부 성분 선시행 후 확대 필요"
"'기준가격', 약가 분포·공급 유지 가능성 등 고려"
"의·약사, 환자에 정보제공...보상체계 뒷받침돼야"

'수요기전 이용 약품비 지출 효율제고 방안' 보고서

약품비 지출 효율화를 위해 한국형 참조가격제 도입을 제안한 정책제안이 나왔다. 가칭 '기준가격제도'다. 이 제도는 환자가 복용약을 선택할 때 경제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고, 이를 돕기 위해 의사와 약사의 지지를 제도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준가격'보다 더 비싼 동일제제를 선택하면 약가차액을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건 기존 참조가격제와 유사한데, '낮은 가격'의 의약품을 선택하면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본인부담금 면제제도'를 결합시킨 게 특징이다.

환자의 경제적인 의약품 선택은 제약사가 '낮은가격'까지 자사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도록 강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실비아 연구위원은 '수요 기전을 이용한 약품비 지출의 효율 제고 방안'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제안했다. 이나경 전문연구원, 박은자 연구위원, 정영 부연구위원이 공동연구진으로 참여해 만든 결과물이다.

대상의약품=연구진은 "급여의 '기준가격'을 정하고 그보다 높은 가격에 대해서는 전액 환자가 본인부담하는 제도는 동일성분 내 대체가능한 제품이 다수 존재하는 특허 만료 의약품 시장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했다.이어 "모든 특허 만료 의약품을 제도의 범위에 일괄적으로 포함할 것인지 또는 일부 의약품군을 대상으로만 포함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참조가격제를 시행하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국가마다 적용하는 의약품 범위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가령 프랑스는 제네릭이 진입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대체율이 80% 이하인 의약품군에 적용한다. 독일은 모든 특허 만료 의약품 뿐 아니라 임상적 개선이 인정되지 않는 특허 의약품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연구진은 "국가마다 제도 적용 범위에 차이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환경에 맞게 적용 대상 의약품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환경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건 의료 현장에서 제네릭 의약품의 대체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이 이번 연구에서 진행한 일반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동일 성분이지만 가격이 다른 의약품 간에 약효나 부작용, 품질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40% 이상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따라서 "모든 특허 만료 의약품 시장에서 이 제도를 전면 도입하는 것보다 초기에는 제도의 수용성이 높고 정책 효과가 기대되는 약품을 일부 선정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제도 초기에 대상이 될 수 있는 약품은 동일 성분 내 대체 가능한 제네릭 의약품이 다수 존재하고, 시장에서 사용 경험이 풍부해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 모두 의학적인 결과를 염려하지 않고 가격을 기준으로 의약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성분이어야 한다. 약효군 단위에서 적용할 수도 있고, 약효군 내에서 일부 성분의 의약품에 대해 적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약품비 지출의 효율화라는 정책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판매 규모가 큰 의약품이 적절하다. 사용량이 많은 의약품으로서 만성질환 치료제와 급성기 질환 치료제, 모두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특히 "이번 연구 설문조사에서 감기나 통증 같은 급성기 질환 치료제와 만성질환 치료제로 처방 받은 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다른 회사의 더 저렴한 약을 선택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77.9%, 86.9%로 나타났다. 이는 질환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의약품 성분을 기준으로 제네릭 의약품 시장 현황과 대체 가능성에 대한 수용성을 고려해 선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기준으로 일부 의약품 성분 시장을 대상으로 제도를 시행한 후 의약품 사용 실태, 약품비 지출 규모의 변화, 환자의 만족도 등을 평가한 후 제도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격설정=연구진은 "의약품의 등재 가격과 별도로 건강보험에서 급여하는 가격 수준(기준 가격)을 정해 약가 경쟁을 촉진시키고자 할 때, 기준 가격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정책 효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준 가격은 대체 가능한 의약품들의 등재 가격 분포 내에서 설정될 가능성이 높은데, 너무 높게 정하면 의약품 사용 행태에서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고, 가격 경쟁효과도 작을 것이다. 반면 너무 낮게 정하면 환자의 본인부담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제약사의 반발도 커져 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따라서 "기준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대체 가능한 의약품들의 약가 분포와 개수를 검토하고, 건강보험 지불 의향, 환자의 지불 능력, 시장에서 제품 유지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 "동일 성분 동일 제제 내에서 많은 제품이 등재돼 있는데도 중간값이 최고가에 근접해 있다면 기준 가격은 중간값과 최저가 사이에서 정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대체 가능한 제품들의 가격이 최저가와 최고가 사이에서 균등하게 분포한다면 중간값을 채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여기다 기준 가격까지 급여할 경우 기업들은 자사 제품 가격을 기준 가격까지 인하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이하로 더 낮출 가능성은 낮다면서 약가 경쟁이 기준 가격 이하로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면 기준 가격 설정 외에 추가적인 가격 설정이 필요하다는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준 가격' 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낮은 가격'을 정해 환자가 대체 가능한 의약품 중 낮은 가격 이하의 제품을 사용할 경우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수요를 촉진할 수 있다. 수요가 촉진되면 기업들은 제품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약가를 '낮은 가격' 이하로 책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독일은 참조가격보다 30% 이상 낮은 가격의 제품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준 가격 대비 비율로 낮은 가격 수준을 정할 수도 있고, 최저가 수준 또는 그에 근접한 기준(가령 최저가 제품 3개)으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 현재 건강보험 약제 급여에서 30%의 본인부담률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과 건강보험에서 70%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약가가 현재 가격의 70% 미만으로 인하된다면 본인부담금을 면제하더라도 건강보험 지출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환자 선택권과 정보 접근권 확보=연구진은 "대체 가능한 의약품 중에서 기준 가격과 낮은 가격을 파악하고 환자가 자신의 선호에 부합하는 의약품을 최종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택 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 행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고, 처방의약품을 결정하는 의사와 조제하는 약사로부터 실제적인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환자가 동일 성분 내에서 저렴한 약을 선택하도록 하는 기전과 의료공급자가 비싼 약을 사용하고자 하는 기전이 동시에 운영되면서 충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도 처방에서 동일한 의학적 효과가 기대된다면 가급적 저렴한 약을 처방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도록 동기가 부여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의사에 대한 지불제도 또는 처방과 관련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가령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제도인 '약제 급여적정성 평가'와 '처방・조제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제도'를 활용할 수 있고, 나아가 지불제도와 공급 구조의 개혁을 통해 의사 처방 행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의료체계에서 환자의 선택권을 증가시킨다고 해도 의사는 처방약을 결정하는 전문가이므로 의사가 환자 중심의 합리적 선택을 도모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약사의 지지도 중요하다. 연구진은 "약사는 처방전에 기준 가격 제도 적용을 받는 의약품이 포함돼 있으면, 환자에게 제품 선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의무가 수반돼야 한다. 기준 가격 이상의 제품과 이하의 제품, 낮은 가격 이하의 제품을 모두 구비해 환자의 선택에 제한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또 "외래 의약품 처방전 양식도 환자의 선택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환자가 받은 의약품 처방에 기준 가격 제도 적용 의약품이 있을 경우, 처방전에서 이것이 자동적으로 표시되도록 해 환자가 인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환자는 일반인에게 익숙한 매체를 통해 처방약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대체 가능한 제품들에 대한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심사평가원의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서비스에 처방약과 동일한 성분의 대체 가능한 다른 제품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고, 본인부담금의 차이에 관한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아울러 "기준가격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동일 성분 동일제제 의약품들의 대체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제네릭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 품질에 관한 당국의 규제는 수요자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환자의 본인부담 기전을 활용한 환자 중심의 수요 기전은 환자의 선택 기회를 확대하기도 하지만 책임성을 높이는 것으로 환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면서 "이것이 결과적으로 환자를 불리하게 작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환자를 더 보호하고 그 편익을 증대시키는 것이 돼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제도 설계에서 견지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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