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개발 30호 신약 '케이캡' 실종사건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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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개발 30호 신약 '케이캡' 실종사건 취재기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1.02.08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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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협상완료약제'로 안내...이후 고시엔 흔적없어
말 못하는 HK이노엔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돌고돌아 PVA 협상 결렬 사실 뒤늦게 확인
약제급여평가위서 최근 재협상안 통과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제품을 꼽으라면 단연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정'(레이저티닙)이 될 것이다. 국내개발 신약 31호로 지난달 18일 시판허가를 받았다. 

유한양행은 지난 5일에는 허가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속적인 R&D 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 추진 의지를 밝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야말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있는 국산신약의 탄생을 알리는 세레모니였다.

렉라자가 이처럼 주목받고 있는 건 이미 글로벌신약으로 자리잡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정(오시머티닙)과 견줄만한 신약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렉라자는 권위있는 국제저널인 '란셋 온콜로지'에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국내개발 신약이 란셋에 등장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비상을 꿈꾸는 국산신약은 렉라자보다 한발 앞서 국내개발 신약 30호 지위를 얻은 HK이노엔의 케이캡정(테고프라잔)이 있다. 

케이캡정은 'P-CAB(Potassium-Competitive Acid Blocker,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차단제)'이라는 새로운 계열의 신약이다. 이 계열 신약은 글로벌에서 일본 다케다제약에 이어 두번째로 당시 씨제이헬스케어라는 사명을 썼던 HK이노엔이 개발에 성공했다. '케이캡정(K-CAB Tab.)'이라는 이름도 '한국이 만든 P-CAB'이라는 의미에서 작명됐다. 

국내 시판허가는 위식도역류질환치료제로 2018년 7월5일에 받았다. 이어 다음해인 2019년 3월1일 급여목록에 등재된 이후 차근차근 고도를 높여가고 있다. 
가령 지속적인 임상투자로 적응증을 확대해 현재 위식도역류질환, 위궤양, 소화성 궤양, 헬리코박터파일로리 제균을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등 4가지로 투여범위가 넓어졌다. 이런 임상투자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해외진출 또한 활발하다. 2015년 중국 기술수출을 시작으로 한국을 포함해 26개국에 진출했다. 이미 글로벌 주역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지난 1일에는 중국 파트너사인 뤄신이 중국내 시판허가를 신청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중국인 대상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 '중국 또는 해외시장에 등재되지 않은 혁신신약(분류1)' 등급으로 심사를 받게 돼 더 한층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도 가파르다. 유비스트 자료를 보면 케이캡은 지난해 725억원의 원외처방 실적을 냈다. 이로써 국내 출시 1년 10개월만에 국내 소화성궤용약제 시장 1위, 국내 전체 전문의약품 시장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원외처방 누적실적은 989억원 규모다. 

케이캡은 진료 및 조제현장의 니즈를 반영해 기존 30정 포장단위 제품에 300정 포장 제품을 지난해 2월 추가하기도 했다. 영업마케팅에만 치중하지 않고 진료현장의 요구에 신축성 있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케이캡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일단 관심을 갖고 보는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런데 이 케이캡이 갑자기 사라졌다? 다소 긴 말머리로 케이캡 이야기를 열거한 건 케이캡의 '실종 아닌 실종' 사건 취재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우선 케이캡은 지난해 사용량-약가연동 협상 2분기 모니터링 대상약제(건보공단 공개)가 됐다. 케이캡 PVA 협상은 등재된 지 1년이 경과했고, 성장세가 뚜렷한 점에 비춰 예견됐던 일이었다. 

이후 건보공단은 홈페이지 '협상완료약제' 공개목록에 지난해 12월21일 케이캡 이름을 올렸다. 건보공단이 실제 타결일보다 늦게 협상완료약제를 공개하는 걸 감안하면 21일 이전에 협상이 마무리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자연스럽게 1월 고시에 협상결과가 반영된다는 것도 예측할 수 있었다. 실제 케이캡과 함께 같은 날짜에 '협상완료약제'로 공개됐던 한국화이자제약의 잴코리캡슐,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벤리스타주, 암젠코리아의 블린사이토주 등은 1월 고시에 반영됐다. 

그런데 이상하게 케이캡은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약제보다 타결일이 조금 늦어 1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케이캡은 2월 고시에도 역시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건보공단 홈페이지에는 있지만 고시에는 없는 이른바 '문서상 실종사건'이다.

뉴스더보이스는 건보공단 측에 먼저 질문했다. '케이캡'은 협상완료가 맞는가. 하지만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협상팀장과 팀원이 모두 인사이동해서 케이캡 히스토리를 잘 알지 못한다. (또 담당이 아니었던 만큼) 답하기도 곤란하다"고 했다. 

다음엔 HK이노엔을 노크했다. 역시 곤란하다는 답변이었다. 회사 측 관계자는 "비밀준수 의무가 있어서 협상에 대해서는 일체 답할 수 없다. 이해해 달라"며, 난처해 했다. 비밀준수 의무는 그동안에도 많이 들어봐서 아는 얘기다. 

협상경험이 많은 다국적제약사들은 비밀준수 조항이 건보공단의 '우월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협상이 잘 안되거나 뭔가 진행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하소연조차 못하게 막고 있는 독소조항이라는 것이다. 특히 언론은 경계대상 1호다. 하지만 비밀준수 의무는 계약에 빠질 수 없는 내용이고, 당사자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다국적제약사들도 정작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보가 공개되는 건 원치 않는다. 다만 언론이 봤을 때 문제로 보이는 건 '비밀'과 '비밀이 아닌 걸' 구분하지 않는 경직성이다. 

뉴스더보이스는 케이캡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정부 측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다. 'PVA 협상 결렬'. 구체적인 협상내용도 아니고 결렬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이렇게 시간이 소요되고, 무엇보다 이런 것까지 비밀이라며 함구대상이 돼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건보공단은 협상이 결렬됐는데 왜 협상완료약제에 케이캡 이름을 올렸을까, 의구심이 든다. 건보공단이 쓰는 '협상완료약제' 개념은 '협상타결'이 아니라 '협상기간종료'라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현행 규정은 PVA 협상이 결렬된 약제는 약제급여목록에서 삭제하도록 돼 있다. 다만 아직 그런 사례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절차는 재협상 가능 여부다. 다행히 케이캡 재협상안은 지난 4일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상정돼 통과된 것으로 확인됐다.

약평위는 재협상 필요성을 검토하면서 단독등재 여부, 대체가능 약제 등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살펴보는데, 특히 해당 약제가 비급여로 전환됐을 경우 환자에게 피해를 야기할 수 있을 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사실 이미 급여권에 진입한 약제가 비급여가 되면 환자에게 미칠 영향은 약제마다 수위는 다르겠지만 없을 수는 없다. 케이캡처럼 출시된지 얼마 안되는 신약이면서 사용량이 많은 약제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글로벌 유망주인 국내개발 신약 30호 케이캡. 이 신약의 PVA 샅바싸움(재협상)은 설연휴가 지나면 곧바로 시작될 전망이다. 다시 만나는 테이블인만큼 건보공단과 HK이노엔, 양측 모두 유연한 협상으로 좋을 결과에 도달하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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