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골목약국에서 단골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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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골목약국에서 단골의 의미를 묻다
  • 주경준 기자
  • 승인 2020.11.11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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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59학번 인천 동구 송림동 인일약국 이숙자 약사
인일약국 가는 길
인일약국 가는 길

 

1호선 인천행 지하철 종점을 두 정거장 남겨둔 도원역에서 한참을 걷다보면 송림동 어느 골목길에서 평범한 가정집 모습을 한 약국을 만난다.

"스물 일곱살에 시작했으니까 이곳에서 약국한지 53년이 됐네. 이전에는 싸리재 동원당약국에 세들어 약국을 했어."

"어느 쪽에서는 재개발 한다고 하고 어느쪽에서는 반대하고 나는 잘 몰라. 재개발한다면 문을 닫아야 겠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 해야지."

자료:인천광역시 사진:조오다 님
자료:인천광역시 사진:조오다 님

이숙자 약사는 1967년 봄 이곳에 인일약국을 열었다. 단층 한옥건물을 헐고 2층집으로 증축했던 1982년 잠시 휴업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일요일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 문을 열고 밤 9시가 넘어야 문을 닫는다. 

"앞에 있는 현대시장에 장보러 1년에 단 한번도 간적이 없던 때도 있어.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내가 약국에 있어야 하니까. 자리를 비운 적이 없어."


"지금은 7시 넘어 문을 열지만 옛날에는 새벽 6시면 문을 열었지. 사실 문닫고 열고가 의미가 없었던 때야. 밤 늦게도 새벽에도 환자들이 찾아와서."

"의약분업이 시작되고 나서 초기에는 처방전은 많이 받았어. 현대시장 가는 길에 대동의원도 있고."

자료: 인천광역시 사진: 조오다 님
자료: 인천광역시 사진: 조오다 님

 

"여기저기 의원 바로 옆에 약국이 생기면서 줄었지."
"어쩔 수 없지, 하나 둘 처방조제 환자가, 바로 옆에 약국이 편하니까."
"그래도 꼭 우리약국을 찾아오는 분들도 받질 못해, 지금은 약이 없어서."
"한통을 사도 재고 남는 약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찾아오시는 분을 되돌려 보내는 경우도 있거든. 그래서 처방조제는 많이 줄었어."

"약국이 잘돼야 해줄 이야기도 있는데... 오시는 분들이 있으니 약국은 열어야지."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분업 초기 처방전이 많았다던 대동의원을 찾았다. 백미터 남짓 떨어진 대동의원은 인일약국 만큼 연륜을 자랑하는 의원이었다. 시장가시는 것도 마다하신다는 이야기가 기억나 부러 현대시장을 들러 귤 몇개 사들고 아쉬움에 작별인사를 다시 나눴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동네 할머니는 "오래됐어. 왜? 잘 알지, 가까우니까 자주 가지"라며 "가게가 다 없어졌는데 있어서 좋지"라고.   

인일약국 가는길 인근 주택가 풍경과 쿨인터뷰 할머니
인일약국 가는길 인근 주택가 풍경과 쿨인터뷰 할머니

이숙자 약사와 만남을 준비하면서 당시 흔치않던 1981년 설문자료 하나를 찾았다. 이화여대 건강교육과에서 진행한 '주부들의 약국이용 및 약 복용실태조사'라는 제목의 설문이다. 

응답자의 무려 91.2%는 약국과 거리가 가깝거나 적당하다고 답했다. 또 몸이 아플때 77.4%가 병원 대신 약국을 찾았다. 

48%는 약국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는 가깝고 편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병원에 비해 약국이 친절하다는 응답은 33.2%에 달했고 친절하지 못하다는 7.5%에 불과했다.
약사를 믿을 만하다는 응답은 40.6%, 믿기어럽다는 2.2%, 약복용시 용법을 지킨다는 응답비율은 73.4%였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의미를 달리할 수 없는 덕목인 신뢰도와 친절도 그리고 접근성에 대한 설문이다. 현재 약국이 갖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특히 기억나는 환자분이 계신가요? 기자의 치명적인 말실수에 이숙자 약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골의 의미에 대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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