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 든 도둑?'  일반의약품 갈등에 대한 단상(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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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에 든 도둑?'  일반의약품 갈등에 대한 단상(수첩)
  • 주경준 기자
  • 승인 2020.10.14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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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라는 명성 덕에 사전약속 없는 인터뷰는 언감생심, 간혹 따뜻하게 맞아주시면 넙죽넙죽 감사 인사를 드리면서 개국가를 돌아다녔다.

한약국을 불쑥 찾은 이유
한약국을 불쑥 찾은 이유

그 와중에 우연히 만난 박모 한약사는 불쑥 찾은 기자의 방문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약국 외관에 병의원처방전문 이라는 용어가 없는게 신기해 들어갔을 뿐이었고 나눌 수 있는 대화도 짧았다. 불편을 준데 대해 이자리를 빌어 깊이 사과하며 글을 더해 본다.

일반의약품 관련 갈등에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개인의 의견을 말하는게 적절하지 않는것 같다는 우문현답에 이서 "일반의약품으로 한약국을 운영한다는게 정말 힘드네요"라는 답변이 대뜸 돌아왔다.  

약사사회는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에 대해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매우 격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곳간에 든 도둑을 잡아달라고 했더니 잡기는 커녕 도둑을 배출한 학교를 폐교시키자는 형국' 이란 격한 표현도 이러한 흐름 속에 최근 등장했다. 대한약사회의 한약학과 폐지라는 대응전략에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며 실천하는 약사회라는 단체가 낸 성명서의 일 부분이다.

약사사회의 정서와 입장에 대한 이견을 말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다만 '곳간에 든 도둑'이란 표현에서 곳간에 방점을 두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첨애한 갈등에 대해 견해를 갖기에는 깊이가 없다보니 비겁해보이지만 일반의약품이라는 곳간의 상태는 어떠한가만 관심을 두고 글을 쓰게 됐다.

약사 사회는 일반의약품과 관련해 안전상비의약품이라는 아픈 상처가 남아있다.  의약품 분류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수술과정도 없었고 일반약의 접근성이 낮아지는 원인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안을 모색한 것도 아닌 그저 현상에 대한 미봉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 제도는 약사사회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 시행되고 있다.

일반의약품 표시 약국은 의외로 적다
일반의약품 표시 약국은 의외로 적다

이 아픈 상처에 대한 기억이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에 대한 약사 사회의 정서와 격한 반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 일반의약품이라는 곳간 상태는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약사와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내침 김에 주변 약국을 전부 돌아 본 후 내린 결론은 일반의약품 구매 접근성이 가장 높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약국이란 것. 

작심하고 대략 200여개 약국을 다니며 약국외부에 '일반의약품'을 표시한 곳을 손꼽아 보니 얼추 7곳 정도였다.  의외로 약국 외부에 '일반의약품'을 홍보하는 약국을 찾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대신 색바랜 개별 일반의약품 포스터만 잔뜩 만났다. 또 가끔 건기식 홍보물이 약국의 외부를 감싸고 있을 때는 고개를 까우뚱할 수 밖에 없었다.

'병의원 처방조제 전문'이라는 약국의 대명사가 된 문구 이외 '일반의약품'이라는 단어보다 더 찾기 쉬운 내용은 대략 이렇다. 약국의 연륜이 묻어나오는 '한약ㆍ양약' 이라는 표현이나 '상담 전문', '건강식품 또는 건기식' '헬스나 건강' 등이다.

적지않게 만나게되는 화살표 약국
적지않게 만나게되는 화살표 약국

표면적인 내용을 더 추가하면 대로나 길에서 아예 보이지 않는 화살표 약국, 7시 전후로 문닫는 '처방조제만' 약국, 사이좋게 나란히 개국한 쌍둥이 약국 등은 층약국과 함께 일반의약품 구매 편의성을 낮추고 있고 그 비율은 상당히 높다.

서울 관악구 현대시장 인근에서 45년 넘게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광일약국 오춘택 약사는 "잘못됐지. 그냥 병의원 안에 들어가고 싶은 거지"라며, 약사 스스로 일반의약품을 홀대하고 있는지도 모를 현 상황을 꼬집었다.

꼼꼼하게 따지면 잘못된 부분이 있지만 환자입장에서 직관적이고 이해가 쉽다.
꼼꼼하게 따지면 잘못된 부분이 있지만 환자입장에서 직관적이고 이해가 쉽다.

11년 만에 의약분야에 복귀해 쓰는 기자의 글이 충분한 깊이를 담보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발 더 다가서기 전에 보이는 풍경도 있기 마련이다. 20년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한 곳간의 상태가 심각해 보인다. 

또 집단지성, 상담전문 등을 모토로한 약국체인과 24시간 약국, 야간약국 등 개별약국의 노력을 포함해 약사 사회의 일반의약품 활성화를 위한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 직능의 독립성와 경영 활성화라는 다른 방향성을 가진 목표가 혼재되면서 어수선해 보이기도 하다.

직관적인 표현을 쓰면 처방조제로 대변되는 전문의약품 시장의 축소를 감수하더라도 일반의약품 시장을 확대하며 약료 서비스의 균형을 만들어내는 직능의 독립성 강화가 선행돼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짧은 소견이다.

경영활성화는 사실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전문의약품과 함께 약사직능의 또다른 축인 일반의약품이 건기식이나 화장품 등과 같은 부가적인 경영 활성화 아이템과 동일시되거나 또는 보완제품 연계 판매 아이템으로 논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능 독립성에 대한 상징같은 일반의약품과 상호 견제 의미를 갖는 전문의약품. 약사 직능은 분업시대를 맞아 전문의약품 처방조제와 일반의약품 판매라는 두개 축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전문약이 주이고 일반약이 보조역할을 하며 격을 달리하는 비대칭의 현행 구조는 상호 견제 속에 의약품의 안전성을 최우선시하는 의약분업이라는 취지나 약사 직능의 독립성을 염두에 두면 무척 불편하다.

 

일반의약품 중심의 약국 중 기자가 만난 예쁜약국 두 곳. 연트럴파크와 버스터미널에 있다. 
일반의약품 중심의 약국 중 기자가 만난 예쁜약국 두 곳. 연트럴파크와 버스터미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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