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능후 장관에게 약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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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능후 장관에게 약국은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0.07.0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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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의원실이 '화상투약기'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걸 알게 된 건 지난 6월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기 고작 하루 전날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스마트 원격화상투약시스템 구축·운영' 실증특례 안건을 6월 30일 상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남 의원도 그렇고, 의원실 보좌진들도 속이 탔다. '웬 화상투약기? 그것도 지금 시점에서?'

남 의원은 3차 추경안을 상정하기 위해 열린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불가피 이 문제를 꺼냈다. '화상투약기' 입법은 남 의원을 포함해 현 여당이 과거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이슈였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은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대안인 것처럼 급부상했다. 하지만 보건의료의 근간은 '대면'이다. 이것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화상투약기'도 같은 맥락에서 과거 거부됐었다. 대신 심야공공약국이나 휴일지킴이약국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는데, 별 진전은 없었다.

남 의원은 이런 내용들을 열거하면서 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서 복지부가 반대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박능후 장관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화상투약기가 도입되더라도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니 이 참에 실증특례를 통해 우려되는 폐해가 실제 있는 지 검토해보자고 했다. 어찌보면 부처협의를 통해 말려야 할 사람이 더 부추기는 듯한 모양새였다.

박 장관은 더 나아가 약사사회가 심야공공약국 등을 대안으로 제시해놓고 지난 3년간 별로 한 게 없다면서, 화상투약기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온 일말의 책임이 약사사회에게도 있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박 장관의 말처럼 화상투약기는 과거에도 실효성은 별로 없으면서 안전성 등의 논란만 야기하는 '자판기' 쯤으로 취급됐다. 여기서 실효성이라는 건 심야시간대나 공휴일에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에 도움이 안된다는 의미다. 이런 '자판기'를 굳이 도입하기 위해 약사사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논쟁을 또 치를 이유가 있을까. 코로나19 사태에 편승해 불필요한 갈등만 초래할 자판기를 '비대면' 키워드에 태운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하다.

박 장관의 심야공공약국 발언도 적절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재선의원이 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20대 국회 때 이른바 심야공공약국법안을 발의했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이 법률안은 돈을 낼 수 없다는 기재부와 복지부의 반대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심야시간대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박 장관과 복지부의 '정성'이 부족해 심야공공약국법이 암초에 걸렸고, 박 장관의 말처럼 3년간 진전된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 장관은 우회적으로 약사사회의 책임을 묻기 전에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어떤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듯하다.  

비교해 볼만한 것도 있다. 복지부는 심야시간대 의료공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달빛어린이병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하려고 애써왔다. 우선순위나 경중을 고려한 탓일까. 달빛어린이병원에 투입된 인센티브 등 제반비용은 복지부와 지자체가 매칭해서 부담했는데, 복지부는 이 돈을 쓰는데 아까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심야시간에 경증질환으로 응급실을 이용한 것보다 달빛어린이병원을 찾으면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의료비 부담 차원에서 보면 국민이나 건강보험재정 모두 좋은 일인 건 맞다. 

복지부는 이 때(달빛어린이병원 도입 초기)도 약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었다. 의료기관이 문을 열면 당연히 따라서 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자리했던 것인데, 심야공공약국 이슈에서는 '화상투약기'와 매칭시켰다. 약국은 대체 박 장관에게 어떻게 인식돼 있을까.

남 의원과 의원실이 '왜 지금 시점에서'라고 답답했던 것 역시 코로나19 사태와 연계된다. 주무장관이 '비대면' 화상투약기 운운할 때가 아닌데 무슨소리인지 속이 탔던 것이다. 

약사사회는 공적마스크를 취급하면서 의료인들과 함께 코로나19 사태 한 가운데 섰다. 특히 공적마스크 5부제 초기에는 마스크를 정리하고 파는데 하루일과의 상당수를 보내야 했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약국은 감염병 위기 사태에서 최일선의 국민안전지킴이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이게 가능했던 건 김대업 현 약사회 집행부의 노력도 한 몫했다.

그런데 공적마스크 유통 종료시점에 즈음해서 '화상투약기'라니. 약사사회는 공적마스크 공로로 수혜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당분간은 약사사회를 옥죄는 정책적 위협은 없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런데 이게 헛된 꿈이 된다면.

남 의원은 여름 이후 코로나19의 양상을 우려했다. 만약 지역사회 유행을 기반으로 2차 대유행이 온다면 다시 공적마스크와 5부제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약국에 다시 기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마스크 제도가 종료되는 지금 시점에서 정리를 잘 하는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화상투약기'라니. 

남 의원 등의 관심으로 6월30일 열린 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 '화상투약기' 안건이 상정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비대면' 꼬리를 단 화상투약기 불씨는 언제든 다시 불꽃으로 일어날 수 있다. 그 전에 약사들은 박 장관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약국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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