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후진국 오명과 사라진 균주' 반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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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후진국 오명과 사라진 균주' 반성은 없었다
  • 주경준 기자
  • 승인 2020.05.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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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본 중심 결핵퇴치 협업 및 백신 주권 회복 기대

국산 결핵예방백신은 '결핵 후진국' 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2006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확하게 녹십자의 결핵백신 개발은 주권 확보가 아니라 회복의 과정이다.

국내 결핵백신의 역사는 1948년 프랑스에서 파스퇴르 균주가 공급되면서 시작된다. 일본결핵협회의 도움으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부터 일명 불주사로 불리우며 본격적인 한국의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이후 자체개발을 통해 60년에는 액체 결핵백신이, 79년 냉동건조백신이 개발돼 국립보건원내 제조시설에서 대량 생산됐다.

87년 국립보건원에서 대한결핵협회 산하 결핵연구원으로 생산시설이 이관된 이후 2006년까지 20년간 결핵퇴치의 첨병역할을 하던 국산결핵 백신은 생산시설 노후화와 역가 부적합 등 품질문제까지 일으키며 갑작스레 시장에서 퇴출됐다. 

심각한 문제는 백신과 함께 균주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사라지면서 국내에서 결핵백신 생산이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60여년 가까이 지켜온 결핵백신의 주권을 잃어버린 이 사건은 별다른 논란없이 잊혀졌고 금기처럼 누구하나 이야기를 꺼내길 꺼려한다.

식약처와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기관의 모든 자료집에서는 '결핵협회는 2006년 백신생산을 중단했다'고 언급할 뿐 국산 균주 '파스퇴르 1173 P2'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언급 하나가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시 정부가 다급하게 취한 첫 조치는 파스퇴르 균주를 다시 공급받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허사였다. 프랑스는 자국내 결핵퇴치를 선언하고 균주를 공급하는 형식으로 다른 국가에 이미 원조를 끝낸 탓에 불필요했던 생산용 균주를 모두 폐기해버렸기 때문이다.  균주는 보유한 채 백신만 수출, 원조하는 현행 일본 방식과 차이다.

결국 2007년 시행예정인 결핵백신 국가무료예방접종 사업을 앞둔 정부는 균주 도입을 통한 국내생산을 포기하고 차선으로 수입선을 찾아나섰다.

단독 '피내법' 고집스러운 정부의 두번째 실수 

국내에 유이한 결핵백신 수입사 엑세스파마와 한국백신 등 2곳을 대상으로 정부는 무료예방접종 백신 공급자 선정작업을 펼쳐 WHO 권고사항이라는 근거를 들어 엑세스파마(피내법/데니시 균주)를 공급자로 결정한다.

아래의 표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자료로 결핵연구원 백신생산 중단 직전인 2005년 백신 생산 및 유통업체 명단이다.

 

결핵협회의 파스퇴르 균주, 한국백신의 도쿄균주, 씨제이의 데니쉬균주(코펜하겐 균주) 등이며 접종방법으로 구분하면 피내법이 파스퇴르, 데니시 균주 등 2종이고 경피다천자법이 도쿄균주로 2가지로 분류된다.

참고로 표에 씨제이가 표시된 이유는 엑세스파마의 국내 판권을 씨제이가 사들였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3개사의 대략적인 시장 점유율은 50:40:10으로 한국백신(경피법/병의원 100%), 결핵협회(피내법/보건소 90% 병의원 10%), 씨제이(피내법/병의원100%) 순이며 가격대는 소비자접종비 기준 피내법 1~2만원, 경피법 3~4만원 선. 수영장에서 놀던 아이들의 접종흉터 구분이 뚜렷하다 보니 당시 엄마들 사이에서 흉터없는 백신이라는 입소문이 돌며 한국백신의 점유율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이와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2006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 내용이다. "보건복지부는 BCG 접종 방식 중 피내법이 타당한 것으로 결정하였으나, 병의원은 경피법이 90%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됨. 따라서, 예방 백신의 대부분을 외국산이 차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 라고 밝히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경피용의 강세가 예상되고 국산백신은 퇴출된 상황에서 시장 점유율이 단 10% 전후에 불과했던 엑세스파마(씨제이)의 데니시 균주를 '피내법'이란 이유로 선택한 것이다. 내세운 이유는 하나다 WHO 권고사항이라는 것.

이 결정과 관련 씨제이가 연간 수입실적이 1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엑세스파마의 백신판권을 사들인 것이 정부의 무료예방접종사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과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실체가 파악된 바는 없다. 

피내법 무료접종과 경피법 일부지원 등의 방식으로 다중 공급자 선정을 내심 기대해던 한국백신측에서는 정확한 양의 접종이 가능해 피내법을 권고한다는 WHO 권고 내용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저개발국가의 대량접종을 위해 비용이 저렴한 방식이 권고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경피법 배제결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양분된 백신시장에 닥친 대량 공급부족 사태

데니시 균주백신 수입업체인 엑세스파마 단 1곳에 의존한 탓에 결핵백신 무료접종사업은 시작부터 아슬아슬했다.

보관 편의성을 높인 피내용 건조백신제형은 특성상 1병(바이알)당 10여명 정도 접종할 수 있는데 반해 개봉후 유효시간 4시간 안에 모두 소진하지 않으면 폐기해야 한다. 즉 폐기물량이 많은 보건소는 일시적인 공급부족사태가 발생해 사업초기 지역별 물량조절에 애를 먹었다. 

정부는 이를 보안하기 위해 2011년부터 조달청 발주를 연간 2회로 늘리는 등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펼쳤지만 경피용 추가라는 대안은 검토되지 않았다.

매년 40~50만여명의 접종대상 신생아중 50% 정도인 20~25만여명이 무료예방접종 사업을 통해, 나머지 절반은 한국백신의 경피용 접종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엑세스파마가 접종대상 기준 두 배이상의 물량(4만여병/40여만명분)을 공급했던 이유다.  수입가격도 야금야금 올라 2007년 병당 8220원에서 2018년 2만 936원까지 뛰었고 결핵관련 예산부담은 당초 예상보다 커져가며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대량 공급부족 사태가 발생한 시점은 2015년부터. 덴마크 공급원인 국립혈청연구소가 백신부문 라이센스를 말레이시아 AJ로 판매하는 과정에서 약 3년간 백신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이다.  결핵백신 시장에서 단 10%에 불과했던 점유율과 결핵백신 수입 3년차 업력을 가진 엑세스파마(씨제이) 단 한 곳에 기대어 시작한 무료예방접종사업의 공급부족 사태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소량 생산된 데니쉬균주 백신물량 대부분을 확보하고 정부사업에 단 한번도 편입되지 못했던 한국백신의 협업을 이끌어내면서 다행히 위기를 큰 탈없이 극복하는데는 성공했다.  항상 WHO 권고 접종법이 아니라는 공격만 받던 한국백신의 협조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한국백신은 현 코로나19 진단키트 긴급승인과 유사한 형태로 임상승인 없이 신속하게 관수용 승인을 받아 2016년 피내용 도쿄균주를 수입, 데니쉬균주의 공급부족의 빈틈을 막아냈다.

'돈 때문에 값싼 백신공급 안했다' 시전한 공정위

무료예방접종의 혼란이 마무리된 뒤 엉뚱한 곳에서 최근 사건이 하나 터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16일 질병관리본부와 한국백신의 협업과정에서 어긋난 지점을 문제 삼으며 한국백신과 한국백신상사에 독점적 이득을 획득한 행위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9억 9000만원을 부과하고 한국백신과 관련 임원을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했다.

한국백신이 2016년 일본에서 무료예방접종을 위해 피내용 2만 1900세트를 수입했고 2017년에는 2만세트를 수입키로 했지만 주력제품인 경피용 백신이 안전성 문제로 판매가 급감하자 해당제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2017년에 수입키로 한 2만세트 수입 계약을 취소했다는 것.

이로인한 피내용 재고부족으로 부득이 질병관리본부가 비싼 경피용을 구매해 2017년부터 2018년 6월까지 무료예방 접종을 시행, 한국백신의 월 매출은 63.2% 급증한 반면 신생아 보호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됐다고 제제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국가 예산도 140억이 더 소요되는 손실이 야기됐다고 덧붙였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부당한 출고조절행위에 대한 제제 조치는 1998년 신동방의 대두유 출고건 이후 20년 만이며, 신생아 생명과 직결된 백신을 출고 조절한 것을 제제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고 부도덕을 강조했다.

정부의 무료예방백신 사업의 공급부족 문제를 야기한 쪽은 엑세스파마. 부득이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공급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아무런 타격도 없는데 불끄는 소방수 역할을 한 한국백신에게는 정부에 더 많이 협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제를 받는 모양새다.

횡령 등의 여부는 법정에서 타툴 문제지만 94년부터 경피용만을 공급해오던 한국백신이 질병관리본부와의 협업은 처음이었고 그 결과가 엉뚱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데니쉬균주가 더 좋고 피내법이 WHO 권고인가

2010년 국정감사에서 양승조(민주당)의원의 질의에 질병관리본부 이종구본부장은 답변을 통해 "대한결핵협회에서 생산한 종류의 백신(파스퇴르 균주)이 아니라 좀더 부작용이 적고 안정적인 백신(데니쉬 균주)으로 전환도 했다" 고 밝혔다.

신종플루 직후 백신의 관심이 높아진 분위기 속에서 양 의원이 결핵예산 증가를 추궁하며 백신 국산화의 필요성을 요구한데 대해 이 본부장은 이같은 답변에 덧붙여 녹십자에서 12~13년 파스퇴르 균주를 이용한 백신이 생산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도 내놓았다.

데니쉬균주보다 못한 파스퇴르균주로 국산화하겠다는 오해를 사기 딱 좋은 회피용 답변이다. 기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2006년 데니쉬균주로 무료예방접종 백신이 결정될 당시 데니쉬 균주의 독성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균주의 우열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다름에 대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현재 생산라이센스를 확보해 데니쉬균주를 가지고 생산까지 하는데 반해 한국은 2007년 무료예방접종사업 관련 균주를 수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가격문제로 걸림돌이 됐다는 풍문만 무성했다.

피내법이 WHO의 권고라 우수하다는 정부의 주장도 사실 어색하다. 경피법은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보편적인 접종법이 아니고 가격 측면에서도 개발도상국에서 사용하기도 적합하지 않다. 피내법이 보편적이고 피내용 도코균주 백신은 저가 수출과 원조용을 주료 활용된다. 피내법만 우수하다면 경피법 중심의 일본이 결핵선진국이 된 이유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변화와 백신 주권 회복의 희망

분명한 것은 2000년대 초반 결핵퇴치 관련 정부의 움직임은 전혀 매끄럽지 못했다. 결핵백신 접종율을 높이는데 일조한 정부주도 무료예방접종사업과 한국백신의 경피용 백신 공급은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진행됐다.

다행히 공급부족 사태에서 협업의 과정이 이뤄진 것을 시작으로 질병관리본부의 최근 행보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생산용에 비해 개발과정 더 복잡할 수 밖에 없는 파스퇴르 균주 GC3107를 확보한 이후 초기 혼선을 정리한 뒤 녹십자를 통해 3상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내년이면 결핵백신 주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높인다.

녹십자 관계자는 개발완료일을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정말 많이 연구하고 있다고 강한 개발의지를 밝혔다. 

질본은 또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2차 접종에 대한 대비도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자체개발을 진행하며 해외의 개발 속도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앞으로도 결핵 후진국이라는 멍애는 벗어내기 위한 결핵관련 더 많은 협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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